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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m Aug 15. 2024

깊은 바닷속에 사는

그래서 썩어 문들어져 버린

   “절반 지났어.”


   그 말이 기폭제가 된 듯, 총 아홉 명의 손이 분주히 움직였다. 식탁 주위를 감싸는 시끄러운 식기들의 부딪힘 소리. 손에 묻은 버터 따위 닦을 시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몇 쌍의 눈동자에 기록되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먹는지. 자잘한 것 모두가 그들의 감시 대상이었다.


   숨 막히던 30분이 지났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치료사를 기점으로 의자 소리로 넓은 공간이 가득 찼다.


.


   위장이 꼬였다.


   하루에 다섯 번, 규칙적인 음식 섭취 시간이 존재했다. 스트레스가 쌓여만 갔다. 하지만 그 이유는 전과는 달랐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거린다는 말이 무색하게 곳곳에서 느껴지는 시선. 30분이라는 정해진 시간. 또한 먹토를 방지하기 위해서 식사 이후 1시간 동안은 치료사의 눈길이 닿는 거실에 모여있어야 했다.

   한 공간에 아홉이 모여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적막이 이어졌다.

   몇 쌍의 시선은 계속해서 우리를 살폈다.


   숨이 막혔다. 속이 울렁거렸다.


   가끔가다 들리는 말 또한 익숙하지 않은 독일어뿐. 이해할 수 없는 대화가 고막을 두드렸다. 내가 입을 열 수 있는 기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옥 같던 1시간이 지났다.

   나는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2인실이라지만 아직 나 밖에 없는 이 방. 지금껏 참았던 숨을 크게 터트렸다. 머릿속에는 어떻게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차올랐다.


.


   그럼에도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이곳에 들어온 지 얼추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내가 한 것이라고는 울렁이는 속을 붙들고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 음식을 집어넣은 것. 매일 밤마다 참고 있던 울분을 토해낸 것, 하지만 그마저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입을 굳게 닫은 채였다.

   코를 통해 위외 연결된 기다란 호수는 빠졌을 언정 여전히 무언가가 목에 걸려 있는 답답함은 사라질 생각이 없었다.

   몸무게는 이곳의 계획에 따라 이곳의 점점 늘어만 갔다. 처음 시작 32kg. 어느새 4kg가량 올라 36kg을 찍었다.

   일주일마다 상담사가 물었다. 몸무게가 오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나며 말이다. 그리고 그런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항상 갔았다.


   “글쎄요. 제 생각이 중요하긴 한가요. “


   사실 이제 몸무게가 느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생각을 해보아라. 원치도 않게 정신병원에 끌려와 한 달째 입 한번 제대로 달싹이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과연 내가 긍정적인 사고 회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독일에 온 지 벌써 1년이 지난 차였다. 그리고 그중의 절반을 병원에서 지냈어야 했다.

   사람이 그리웠다. 아무 생각 없이 함께 떠들던 친구들이 그리웠다. 사람 만나는 것을 그리 선호하지 않던 내향적인 나였음에도 지금의 생활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처음에는 나를 이곳에 보낸 부모님을 원망해보기도 하였다.

   집에서부터 2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를 일주일에 두 번씩 오가는 아빠였다. 그리고 나 또한 그것을 알기에 울컥이는 감정을 삼키려 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살이 점차 오르는 나를 보며 아빠는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런 반응이 나에게는 짜증을 불러오는 매개체일 뿐이았다. 단지 저 기쁨을 위해 내가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 건가.


   단단히 꼬여버린 사고회로는 매번 내가 원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장차 1시간이 넘게 걸린 병원길이 마주한 것은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엔딩으로 항상 마무리가 되었다.


.


   그렇게 다시 한 달이 지났다.

   몸이 회복이 될지 언정 나의 정신은 점점 깊은 해수면 속으로 가라앉기를 반복하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시작은 잘못된 다이어트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계속 진행한 것은 나였고.

   그래. 모든 것의 원인은 나였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것도. 그것에 빠져나오지 못해 결국 거식증을 그지고 온 것도. 그제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세상은 모든 것이 인과응보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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