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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m Aug 29. 2024

희망이러는 썩은 동아줄

그마저도 잡지 못했다


   처음으로 입 밖으로 소리를 내었다.


   떨리는 목소리는 내 것이 아닌 듯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의 순간이었을 뿐. 그것은 더 이상의 나의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게 되었다.


   그들을 신경 쓸 더 이상의 여유는 없었다. 더 이상의 이유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막혀있던 목은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지금까지 눈치를 보며 참았던 것은 손도 마찬가지. 매일 우리의 몸을 검사하는 간호사와 치료사로 인해 엉성하게 자라고 있던 손 끝의 새 살을 뜯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


   밖에 있던 누군가가 우는 소리를 들은 모양인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신경 쓸 범위가 아니었다. 노크소리를 무시한 채 다시 머리를 축축해진 이불속으로 파묻었다.

   하지만 노크의 주인은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 따위 필요 없는 존재였다.

   굳게 닫혀있던 방문이 열렸다.

   예상했듯 간호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다급히 붉은 피가 흥건해진 내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왜 울어? 어디 안 좋아?”


   분명 부드러운 말투에 걱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조차도 싫증이 나버린 상태.


   “… 나가고 싶어요.”


   그래서였을까.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던 진심이 튀어나왔다.


   이곳이 너무 힘들다.

   가뜩이나 말도 안 통하는 이곳에서 어떻게 더 버텨야 하는지. 맡지도 않는 음식을 먹으며 더부룩한 속으로 인해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등등.

   꾸역꾸역 담아두고 있던 말은 끊임없이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자 서서히 이성이 돌아왔다.

   아, 말해버렸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렇자 보이는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한 쌍의 눈.


   그래, 이거다.

   이거라면 여기서 나갈 수 있겠어.


.


  며칠 뒤, 일주일에 한 번씩 존재하는 상담날. 상담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여기서 나가고 싶다고 했다고 들었어. 그것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치료사의 입을 통해 전해진 소식.

   상대의 눈을 맞췄다. 그때와는 달리 이성이 존재하는 상태. 천천히 말을 골랐다.


   몇 번이나 반복해 이제는 거의 외우다 싶이 한 나의 독일 이민 이야기. 그리거 도중 발생한 나의 거식증. 그로 인해 거의 반년간 하고 있는 병원 신세 이야기 등.

   익숙하지 않은 문화며 환경. 말은 거의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고 이곳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부모님과의 사이는 더 이상 말 할 것도 없이 최악. 잠깐씩 한국의 것과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인 전자기기마저 모두 막혔다. 아빠가 가져다주는 책은 물론이요, 생각을 돌리기 위해 푼 문제집마저 이제 다 풀어버린 상황. 이 상황에서 내가 나를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게 나를 위한 치료인가요, 아니면 그저 나를 지켜보는 이들을 위한 치료인가요. 여기에 더 있다가는 제가 미쳐버릴 것 같은데요.”


   어느새 눈앞이 흐려졌다.

   하지만 딱 그것뿐.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


   일주일 후, 다시 상담사와 마주 앉았다.

   기대를 품은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주, 상담사가 다른 치료사들을 비롯한 다른 상담사들과 함께 나의 문제에 대해 얘기를 해보겠다고 말한 상황.


   하지만 이런 말이 있지 않나. 기대한 만큼 실망하는 폭이 커진다고.

   이어진 상담사의 말은 결코 좋다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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