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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m Sep 05. 2024

살려달라 빌었다

들어주는 사람 없는 바램

   “너 여기서 못 나가.”


   당연한 결과라는 양 상담사가 말했다.


   “여기서 나가면 너 다시 몸무게 줄어들 거야. 너 거식증 다 없어진 거 아니잖아. 48kg이 넘어야 집에 갈 수 있어.”


   자기들이 뭘 안다고 그러는 걸까.

   나도 싫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싫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부모님은 나를 보는 자신들이 더 힘들다 했지만, 막상 모든 것을 겪는 것은 내가 아닌가. 내가 이 짓을 반복해서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왜 이 사람도, 내 부모라는 사람들도 왜 내가 다시 지옥길을 걸을 것이라 확신하는 것인가.


   억울해.

   그래, 억울했다. 동시에 감정이 들끓었다.


   “뭘 안다고 그래요. 어떻게 그걸 당신이 확신해?”


   힘들게 버티고 있던 마지막 끈 마저 끊어졌다.

   손잡이가 고장 난 수도꽃이처럼 눈물이 흘렀다.


   울었다, 보다 오열했다, 가 맡는 표현이었다.

   48kg이 되기까지는 거의 일 년이 더 걸렸다. 나보고 죽으라는 것인가?


   몸은 살지만 그 안의 알맹이가 죽는 것은 상관없다는 것인가?


   “싫어요. 싫다고. 집에 좀 보내주세요.”


   제발. 제발 나 좀 살려줘.


.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다시 말을 해 봤어.”


   지난주 보다 부드러워진 목소리였다.


   “하루에 한 번, 한 시간씩 휴대폰을 돌려줄 거야. 그때 친구들이랑 연락해도 좋아. 그리고 이번 주 주말부터는 집에 있다 와도 좋아. 하지만 저녁은 이곳에서 먹을 수 있게 6시 안에는 돌아와야 해.”


   갑자기 바뀐 상담사의 태도에 혼란스러운 것도 잠시. 다시 정신을 차리고 쏟아진 독일어를 해석했다.

   나에게 나쁠 것은 없는 내용들.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 날이 되자마자 부모님께 연락을 넣었다. 우리의 사이가 좋다 할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과 있는 것이 이곳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었다. 지난번 일이 있고 나서 내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 또한 내게 더 이상의 압력을 불어넣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주말이 되었다.


   족히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그럼에도 힘들지 않게 느껴졌던 것은 오랜만에 맞이한 편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얼마 만에 남의 눈치를 보지 않은 채 밖으로 나온 것이란 말인가. 드디어 숨 통이 틔이는 듯했다.

   오랜만에 걱정 없이 가적들과 편안한 시간을 보낸 채였다.

   하지만 눈치 없는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 해도 거의 3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4시 30분. 다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오랜만에 맛본 자유와 평온이 너무나도 좋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벋어 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무거운 발걸음과 함께 다시 시설로 발을 옮겼다.


   6시.

   다시 지옥 같은 눈치 게임이 시작되었다.


.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던 자유시간이었다.

   한 번 맛본 자유와 평온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주일에 단 두 번 존재하는 시간. 다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든 이제 다 상관없었다. 그날부로 나는 죽어라 주말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두 달이라는 시간이 더 지났다.


   ‘다음에는 부모님이랑 같이 보자.’


   지난주 상담사의 말에 따라 이 날의 상담실에는 부모님 또한 자리를 차지한 채였다.


   ”주말에 어땠어? “

   “좋았어요. “


   오랜만에 맛본 평화는 달콤하더군요.

   미소와 함께 질문에 대답했다.


   “자녀분이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 하는 걸 아나요?”


   이번 질문의 대상은 부모님이었다.


   “네.”

   “하지만 지금 나가면 높은 확률로 다시 살이 빠질 겁니다. 그리고 다시 여기에 오겠죠. “


   또 그 소리야? 이곳은 내가 피 말라죽기를 바라는 것일까.

   하지만 이어지는 말. 그 한 마디에 다시 심장이 뛰었다.


   “그럼에도 나가겠다 하면 나가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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