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동엽 신부는 우리가 신을 사랑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바로 '고통'이라고 한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신을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도 자유의지라고 본다. 인간의 고통 뒤에는 선택이 있고, 그 선택 뒤에는 자유의지가 있다. 고통은 자유의지를 엉뚱하게 사용했을 때 찾아온다. 우리의 선택이 신의 섭리의 궤도에서 이탈했을 때 고통이나 불행이나 죽음으로 경고하면서 정상궤도로 돌아가라는 신의 신호를 보낸다. 이에 김안제 교수는 신이 인간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부여하고 스스로 살아가도록 하였다고 해석한다. 그는 인간의 고통과 불행과 죽음은 신이 일부러 주지는 않은 것이라며 자연스러운 변화와 진화의 섭리라고 본다. 신이 사랑하는 인간에게 생로병사의 과정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진보와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고 보았다.
신은 인간에게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왜 주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첫째, 인간의 고통과 불행은 자기들의 자유 의지와 도덕적 선택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종교는 신이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다고 가르친다. 자유 의지는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으로, 이로 인해 사랑과 선행도 가능해지지만, 반대로 고통과 불행도 발생할 수 있다. 자유 의지를 통해 인간은 올바른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고, 고난을 극복하며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는 인간의 삶에 도덕적 가치와 책임감을 부여하기 위한 신의 의지라고도 봐야 한다.
둘째, 고통과 불행은 성장과 성숙을 위한 과정이다. 고통과 어려움은 인간의 내적 성장을 돕는 과정이다. 종교에서는 고통을 통해 인간이 삶의 의미를 더 깊이 탐구하고, 자신을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를 찾도록 인도받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셋째. 인간의 고통과 죽음은 신의 의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일부 신학자들은 고통과 죽음이 보다 높은 차원의 신의 계획의 일부일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은 자신의 한정된 이해로는 신의 계획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우며, 인간의 고통은 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미지의 과정으로 본다. 예를 들어, 고난이 있어야만 기쁨을 이해할 수 있듯이, 고통과 불행도 인간이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신께 감사를 느끼도록 하는 방식이다.
넷째, 죽음은 영원한 삶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불행마저도 흔쾌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죽음은 많은 종교에서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인식한다. 죽음은 영혼이 더 나은 세계로 가는 관문이거나 신과 더 가까이 가는 기회이다.
인간의 고통과 불행과 죽음의 근본적 원인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한 죄(선악과를 따먹은 원죄) 때문이다(로마서 5장 12절). 물론 인간이 자유의지를 잘못 행사하여(자범죄) 그 결과로 고통과 불행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오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다(요한복음 9장 1절-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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