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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 Feb 16. 2022

이 방이 네 방이냐 물으신다면

어쩌다 코로나가 만들어 준 기회

나는 한창 다음 집을 물색하던 중에 사설 기숙사에서 연락을 받았다. 당시 살고 있던 집에 이사 가기 전에 신청서를 넣어 뒀던 곳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학생들이 많이 집으로 돌아가서 방이 비니까 아직도 집을 구하고 있다면 보러 오라는 연락이었다. 일이 풀리려면 이렇게도 풀릴 수 있구나 생각하고 바로 약속을 잡았다. 우반(U-Bahn, 지하철)으로 40분, 자전거로 30분 걸린단다. 내 속도로는 40분 걸리겠지만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가볍게 만나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건 면접이었다. 그날따라 독일어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어학원 다니면서 백 번은 연습한 자기소개니까 그랬겠지만. 독일에 왜 공부하러 왔는지부터 내 전공에 대한 이야기까지 아주 깊은 대화를 했다. 그리고 신청서에 적어냈던 내 한 달 생활비가 독일에서 지내기엔 충분치 않다고 했다. 너무 많이 받는다 하면 기숙사에서 안 받아줄까 봐 적게 적은 건데, 적은 것도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돈은 더 받을 수 있다고 얘기하고 넘어갔다. 그날 바로 방도 보여준다고 했다. 방은 크기가 다양하고, 크기에 따라 방세가 다르다고 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제일 큰 방이 당시 살던 방보다 150유로는 저렴했다. 아, 역시 이 나라는 학생에게 관대하구나 생각했다.


처음 본 방은 꼭대기에 위치한, 당시 지내던 방과 비슷한 크기의 방이었다. 침대와 옷장, 책상이 기본 가구였다. 그런데 이제 천장이 기울어져 있는. 온통 새하얗게 칠해진 벽과 들떠있는 장판, 문이 딸린 작은 창고 안에는 부스러기가 가득했다. 세면대가 있어서 그런가 감옥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선택지가 없는 걸. 여기저기 소개해주는 사감의 말에 "네, 좋아 보이네요. 괜찮네요." 대꾸했다. 계속 보겠냐는 말에 나는 당연히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선택지가 3개라면, 남은 방도 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두 번째 방은 (몇 층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천장은 평평했다. 아까보다 좀 더 작았지만 주황색 커튼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탓에 오히려 아늑해 보였다. 침대, 옷장, 책상, 세면대. 이 방 정도면 그래도 살 만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방이 기숙사에서 제일 작은 크기라고 했다. 아까 그 방보다는 이 방이 낫겠다 혼자 속으로 재고 있었다. 얼마인지는 안 알려주는데 물어보기도 쫌 그래서 그냥 듣고만 있었다. 얼추 설명을 마치고 마지막 방을 보러 갔다.


마지막으로 본 방은 이미 입주자가 정해져 있는 방인데, 땅층(Erdgeschoss, 한국식 1층)에 이 방과 같은 크기의 똑같은 방이 빌 거라고 했다. 그러니 이 방을 보면 된다고 얘기했다. 직전에 본 방 보다 2배는 커 보이는 넉넉한 크기에 일단 마음이 동했다. 건물 안에서도 구석에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세면대가 있어도 감옥처럼 보이지 않는 방이었다. 그 방을 보고 나와서 공용 화장실, 샤워실과 부엌도 차례로 봤다. 화장실과 부엌 셰어가 걱정되긴 했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선택지가 없는걸.


다시 사감실로 돌아오자마자 어떤 방을 원하냐고 물었다. 나는 우물쭈물 제일 큰 방이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확실하게 하나만 정해달라고 했다. 방을 본 당일에 방을 결정하라고요?! 정말 머릿속이 핑핑 돌았지만, 9제곱미터의 방과 락다운을 생각하면 얼마나 살게 될지 몰라도 큰 방을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내 한 달 생활비가 적어서 안 된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걸로 문제 삼지는 않았다. 다음 문제는 계약일이었다. 나는 현재 계약이 다음 달 30일까지라고 했다. 사감은 30일은 너무 늦다며 원래는 다음 달 1일에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그럼 조금 일찍 들어가겠다고, 15일에 이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고 보면 처음에 보여준 방은 왠지 나를 시험해 보려는 의도였던 것 같았다. 아니다, 그 사감이라면 정말 그 방을 세 주려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음... 모르겠다. 아, 그리고 나는 그 집에서 1년을 살게 된다.


여기까지가 독일의 대도시에서 집을 구하던 이야기다. 지금은 대도시 근처 소도시에서 살고 있는데, 여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도시에서의 접근성이 좋다는 이유로 신축 건물의 미테(집세, Miete)는 웬만한 대도시만큼의 값을 부른다. 종합 대학이 한 개뿐이지만 공립 기숙사는 늘 만원이다. 관계자 말로는 비대면 수업이 진행됐을 때 본가로 갔던 학생들이, 대면 수업이 재개되면서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방 구하기가 힘들단다. 또, 주변 말로는, 코로나로 학생들의 정규 학기가 밀리고 현실적으로 졸업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단다. 어떻든 간에 새로운 도시에서 새 학기를 시작하는 신입생에게는 좌절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나는 늘 방을 구해왔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다. 넉넉한 크기의 방과 친절한 이웃들과. 이제는 내 방이 온전히 휴식을 취하고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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