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김동수의 나눔톡톡 제28화
10월이면 떠오르는 아픈 기억이 있다. 공적 안정성과 책임성의 붕괴가 불러일으킨 인재, 바로 이태원 참사다.
수많은 젊은 생명이 거리에서 허망하게 스러졌다. 참사 3주기를 맞은 오늘, 우리는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날의 뼈아픈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특히 대형 행사에서는 안전관리와 응급 대응의 중요성을 거듭 명심해야 한다.
위급한 상황에서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생명을
살리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바로 심폐소생술(CPR)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 TV 화면에 비친 일반 시민들의 CPR 장면을 보며, ‘그때 더 많은 사람이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면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특히 응급처치 교육을 보급하는 대한적십자사의 직원으로서 그 아쉬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응급상황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의료진이 도착하기 전 즉각적인 조치가 생사를 가른다.
골든 타임 4분 이내에 CPR이 시행되면 생존율이 2~4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일반 시민의 응급처치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에서는 운전면허 취득 시 기본 CPR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응급처치는 전문가의 일’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고 의무교육이 아니다.
대한적십자사는 1949년 우리나라 최초로 응급처치법 교육을 시작한 기관이다.
이후 학교·군부대·기업 등 다양한 현장을 찾아가 생명 교육을 꾸준히 보급하며, ‘생명을 살리는 시민교육’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전국 곳곳에서 응급처치 경연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는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위급한 상황에서 신속하고 정확한 대처 능력을 기르는 뜻깊은 자리다.
지난 주말 필자도 경연대회 현장을 찾았다. 학생과 일반 시민들이 실전처럼 CPR을 시연하는 모습은 진지함 그 자체였다. 그들의 땀과 집중력 속에서 ‘생명 존중’이라는 말의 무게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작은 손길 하나, 짧은 몇 초의 행동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현장에서 생생히 전해졌다.
우리나라에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의2에 의거 ‘선한 사마리아인 법’을 적용하고 있다. 이 법은 비의료인이라도 선의로 응급처치를 한 경우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제도다. 즉 도움을 주려다 혹시 잘못될까 두려워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응급상황에서는 몇 초가 생명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헌혈이 생명을 나누는 행위라면, 응급처치는 생명을 지켜주는 나눔이다.
응급처치의 3대 원칙은 ‘깨우고(의식 확인), 알리고(119 신고), 누르고(AED 사용과 CPR 실시)’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기본이 생명을 지키는 골든 타임의 핵심이다.
여기에 자동심장충격기(AED)가 공공장소에 확대 보급되고 있으나, 여전히 심폐소생술과 사용법을 모르는 시민이 많다. 기기가 있어도 사용할 줄 모르면 무용지물이다.
이태원 참사 3주기를 맞은 오늘, 우리가 모두 다짐해야 할 것이 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내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살리는 방법인 CPR을 배우자.
응급처치는 거창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향한 관심이며, 공동체를 지키는 책임이다.
우리가 모두 생명을 살리는 방법을 알고 있을 때, 우리 사회는 한층 더 안전하고 따뜻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