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고 싶었다.
2~3일 정도 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나면 마음의 창문을 힘껏 열어야 할 때가 온다. 새로운 공기를 들이고 탁한 공기는 내보내야 한다. 가까운 곳에서 산책을 하든, 카페를 가든,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새로운 감정을 불어넣어야 한다.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살아갈 이유는 만들면 되니까.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독특한 외관에 처음부터 눈길이 가던 곳. 종일 열심히 일하던 해가 슬슬 등을 보일 때 그곳으로 갔다. 야경이 멋진 곳이라 꼭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저녁식사도 하고, 좋은 것만 잔뜩 채워 넣어 좋은 하루로만 남게 할 생각이었다.
아직 겨울이 가득 배어 있는 새 공기는 아주 차가웠다. 주머니 밖으로 꺼내둔 사이 새빨갛게 얼어버린 손을 싹싹 비벼 녹이며 식당가를 찾았다. 자주 가지 않는 곳이다 보니 자꾸만 헷갈리는 바람에 길을 잘못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즐거웠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길을 찾고 있으니까. 아마도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가는 것보다는 훨씬 머리에 잘 남을 것이었다.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입가를 옅게 물들인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겨우 찾아들어간 곳은 쌀국수 전문점.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길을 헤매다 보니 몸을 녹일 수 있는 뜨끈한 음식이 먹고 싶었다.
양손을 꼭 쥐고 덥힌 다음 추위에 얼얼해진 뺨을 감싸 풀어주었다. 이제는 꽤나 능숙하게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주 살짝 차가운 물을 마셔 마른 목을 축이고 나니 긴장이 풀려 망연히 앉아있었다. 좋아하는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잠깐의 기다림 뒤에 눈앞에 놓인 쌀국수는 아침과 점심을 거르고 먹었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훨씬 더 맛이 좋았다. 뜨끈한 고깃국물이 속을 덥히고 온몸에 퍼져 약간의 추위마저 깨끗이 녹이고 지나갔다. 손끝, 발끝, 가슴 한가운데에 봄이 찾아온 것 같았다.
주말이었지만 생각보다 식당가는 그리 붐비지 않았고 그 덕분에 조금 더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좋아하던 음식을 오랜만에 먹으니 물처럼 넘어갔다. 혼자 밥을 먹으면서 그렇게 열심히 먹은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배를 든든하게 채운 다음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편의점도 구경해 보고, 무료 전시도 관람하며 발 닿는 대로 마음껏 걸어보았다. 새로운 향기, 사람들의 소리, 조명, 활기.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오늘도 역시나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겁을 내지 않고, 마음껏 걷고 마음껏 보고 마음껏 들어보았다.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새로운 것들 투성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에는 다가가 보기도 했다. 동네에 산책하러 나온 강아지들이 왜 그렇게들 행복한 표정을 짓는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다가왔다.
노을의 색깔이 한층 더 짙어질 때 디자인 스토어로 향했다. 걸음을 멈추게 할 만한 귀여운 물건들이 가득했다. 에코백, 볼펜, 메모지와 엽서, 스티커와 화분. 누구라도 한 번쯤은 구경할 만큼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한 것들. 나 역시도 그 누군가 중 한 명이었다.
눈을 반짝이게 하는 물건들 사이에서 고민했다.
'저녁도 잘 먹었으니 이만 돌아가자'라는 목소리와 '작은 것 하나쯤은 기념으로 사도 되지 않아?'라는,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한 목소리가 마음 안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손에 든 작은 엽서와 메모지를 한참 바라보았다. 고양이와 강아지. 둘 중 하나는 살 수 있을 것 같아.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사서 갈까? 그런데 고르자니 너무 고민된다. 어쩌지?
정신을 차려 보니 손에는 작은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고 그 안에는 아까 그렇게 고민하던 메모지와 엽서가 둘 다 들어 있었다. 마음 안에서 그렇게 다퉈대던 두 목소리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둘의 침묵에 작은 한숨으로 답했지만 아기자기한 강아지와 고양이가 그려진 메모지와 엽서를 보니 한숨은 한순간에 녹아 사라졌다.
나에게 보내는 격려의 선물이라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 코스는 야경 감상.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 곳이 있었다. 나는 부끄럼이 많아 그들처럼 내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풍경 사진 하나 정도는 남겨 보았다. 따뜻한 조명이 어둑어둑한 길을 저녁달과 함께 밝히고 있었다.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이 사랑스러웠다.
잠시나마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오늘의 저녁 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