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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우울 상점 07화

인형

by 이지원

향취마저 흐릿해진 기억을 좇는다.

오래 전의 기억. 두툼한 몸뚱이를 가진 인형을 집에 들였다. 두 눈이 푸르스름한 늑대개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조금 까실한 솜으로 속을 채운 인형이었다. 단단한 주둥이와 빳빳한 회색 털, 볼록 나온 하얀 배, 감지도 못하고 둥그렇게 치켜뜬 눈, 살짝 벌어진 주둥이 사이로 얼핏 보이는 혀.


멍한 눈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어디에 닿을지 알 수 없는, 자꾸만 마주치게 되는 눈. 내가 그 인형을 집에 들였을 때 가족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그 속에서 보통의 반응을 볼 수는 없었다. 귀엽다든가, 예쁘다든가. 인형을 보면 다들 탄성처럼 내뱉는, 그런 말캉한 단어들 말이다.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모습을 한 인형을, 나는 쭉 데리고 놀았다.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책을 읽어준다거나 공부를 한다거나 하며 하루를 보냈다.


아이들은 인간의 속성이 없는 대상을 의인화하기도 한다. 감정이 없는 무생물에도 인격을 부여하고 친구처럼 대한다. 나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타고 있던 차의 창문에 굵은 빗방울이 여럿 떨어졌을 때, 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티슈를 뽑아 창문을 문지르기도 했으니까. 물론 단지 시늉에 불과했지만.


희끄무레한 기억을 더듬으며 인형을 돌보고 있자니 야릇한 기분이 피어났다. 방 곳곳에서, 꾸물거리며 기어올라 다물어졌던 분홍빛 꽃망울을 톡 터뜨렸다.

참을 수 없이 그리운, 걸었던 곳을 도로 되짚고 싶을 정도로 아찔한 향기. 조그맣고 보드라운 손으로 빗방울에 묻힌 차창을 쓰다듬던 기억. 손끝에 전해지던 한기, 이름을 지어 부르던 입술. 눈앞에서 끌어안아 달래고 있는 그 인형의 혀처럼 붉고 작은 것.


이제는 아이의 것이라고 부를 수 없는 손이, 마디가 좀 더 길어진 손가락이 납작하게 달라붙은 회색 털을 쓰다듬었다. 약간의 온기가 손바닥에 닿았다. 아마도 나에게서 배어 나온 것.

머리에서 등으로, 등에서 배로 손길이 옮겨갔고 미적지근한 온기는 정확히 손바닥이 가는 곳만을 짚었다. 푹신푹신한 몸에 아주 약간의 응달이 피었다. 성긴 곳은 그리움이 채웠다.




"그 애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근육이 빠져 휘뚝이는 다리의 재활을 받을 때 그런 말을 했었다. 거리가 벌어진 천장에 뱉어내듯이. 약간의 의문을 표하던 선생님께서는 이유를 물었고 그때 다리에 얹어졌던 손의 온기도 잠시 식었다. 여전히 허공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예뻐해주고 싶어서요."


그때 나는, 아마도 그 인형에서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았지 싶다.

돌아갈 수 없는, 그저 애틋하기만 한 작은 어린아이를.




오늘 우울상점의 종을 울린 것은,

오래된 온기를 품은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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