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이 심할 때 무의식적으로 찾는 물건은 이어폰이었다.
청력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찾게 되었다. 그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외에는 어떤 것도 들을 수 없었으니까. 경쾌한 음악을 들으면 소란스러운 외부와 마음속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의 스위치가 잠시 내려간다.
기숙사에 있을 때에는 종종 이어폰과 함께 새벽 산책을 나갔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먼 곳까지 나간 것은 아니고, 그냥 학교 주변만 빙빙 돌았다. 새벽에 잠시 쉬었다 가는 안개를 만날 수 있어 반갑기도 했다. 차가운 공기 속에 몸을 맡겨두고 있으면 쟁쟁거리던 음악소리가 함께 피어올라 아직 저물지 않은 조각달의 속을 채웠다.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게.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 오직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그려졌다.
형태도 빛깔도 다른 무언가. 그 누구도 발견할 수 없는 것. 이곳에 함께 들어와야만 닿을 수 있는 풍경.
머리 위를 도는 하늘, 부드럽게 등을 떠미는 바람, 살짝 흩어진 머리카락, 가사 없는 음악 사이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숨소리.
나를 품었던 시간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오늘 우울상점의 문 앞에 찾아온 것은,
시간의 경계를 허무는 이어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