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스 안에 잠든 다리를 두고는 어딘가로 나갈 수가 없었다.
2018년, 서고 걷는 것을 할 수 없었던 가을. 더 나아지기 위해 행한 수술이었다지만 나아짐의 길은 참 멀고도 험했다. 그곳에서 싹을 틔운 우울감이 마음을 먹고 자라 숲을 이루던 시기.
외출은 어려웠기에 베개에 기대앉아 책을 읽거나 전동 침대에 달린 테이블을 펼쳐 그림을 그리며 지냈다. 기분전환을 한다면 가끔 휠체어를 끌고 거실로 나와 영화를 보는 정도. 그리고 방의 환기를 위해 베란다로 이어졌던 창문을 여는 것. 딱 그 정도의 활동이 나에게 허락되었다.
그렇지만 책도 그림도 늦은 밤까지 계속해서 읽고 그릴 수는 없었다. 만약의 경우를 위해 내 침대 곁에는 항상 부모님이 대기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 분의 단잠을 몰아내지 않으면서도 따분함을 잠재울 수 있을 만한 활동을 찾아야 했다.
실내에서의 시간이 두텁게 쌓여가던 밤에 선택한 것은, 보름달 관찰하기.
그즈음부터 바깥 풍경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집안을 밝히던 모든 조명이 꺼진 뒤에야 선명하게 드러나던 바깥세상. 내가 있던 자리에선 하늘의 구름과 달, 그리고 이따금씩 찾아오던 별만 보이긴 했지만, 오히려 딱딱한 도시의 풍경에서 벗어나니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날이 좋을 때 선명하게 보이던 달을 바라보다 보면 어릴 적에 읽었던 <달 샤베트>라는 동화가 떠올랐다. 더위가 달아나고 쌀쌀한 가을이라 녹은 달로 샤베트를 만들어 먹을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대신 달이 많이 녹아 가늘어졌을 땐 내내 마음 안에 모아두었던 달 물로 꽃을 피워냈다. 달을 닮아 노랗게 빛나는 달맞이꽃을.
그렇게 해서 다시 달이 차오르면 별무리 속을 떠돌던 옥토끼들도 집에 돌아가려나, 하고 생각했었다. 동화 속 이야기처럼.
오늘 우울상점에 찾아온 것은, 서늘한 밤공기와 달을 품은 유리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