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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피어나다

by 이지원

어젯밤에는 막걸리를 두어 잔 마셨다. 시큼 텁텁하고 씁쓸하면서도 들큼한 술. 뽀얀 액체에 담겨 흐르던 탄수화물 특유의 단맛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입안에 맴돌았다.


금빛 막사발. 머리 위로 쏟아지던 조명을 받아 노랗게 빛나던 것.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동그란 둘레에 하얀 조명이 가루가 되어 내려앉았다. 긴 줄이 되어 둘레에 달라붙었다. 노르스름한 빛이 눈동자 안에서 어른거렸다. 어쩐지, 가슴 안쪽이 벅차오르는 것만 같은 느낌.


목을 쓰다듬으며 가슴 안쪽으로 넘어간 막걸리의 탄산이, 그 달고 씁쓸한 따끔거림이, 작은 기포가 되어 몸속에서 터졌다. 방울방울, 사랑스러운 몸짓으로 떠오르며.


살짝 덥혀진 볼을 감싸고 생각했다. 나란 사람은 무엇 때문에 글을 쓰는 걸까?


내가 쓰는 글은 그다지 실생활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 어려운 인간관계를 무사히 지키는 법을 소개하는 글도 아니고, 기가 막힌 요리법을 소개하는 글도 아니다. 높은 언덕 위에 먼저 올라 손짓하는 가이드도 아니다. 오히려 저 밑에서, 발목을 죄고 몸을 삼켜 오는 늪지대에서 버둥거리는 사람에 가깝다.

그저 버둥거리기만 하는 삶을, 속 시원한 사이다 한 병도 열지 못하는 삶을 기록하는 사람일 뿐이다.

나는 왜 일기장에 넣어두어도 충분한 글을 구태여 세상으로 꺼내었을까. 왜 종이뭉치들의 눈에 빛을 쏟고 사람을 보여 주었을까. 내가 쓰는 글이, 어떤 영향을 미치길 바라는 걸까. 세상이 나의 글에, 그 안에서 피어나는 희미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진한 고기 향이 퍼지는 순대와, 냉기가 조금 물러간 막걸리를 볼이 불룩하게 몰아넣으며 생각을 부풀렸다.

보이지 않는 것에 숨이 막힐 적마다 그것을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만들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듯이, 나는 나의 불안과 우울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었다. 새까맣고 각진 글자를 통해서, 내면의 경계 속에 발을 담근 채로 일렁이는 그것을 현실로 꺼내었다.


모든 것이 다 끝난 뒤에 그리는 것도 좋겠다 싶었지만, 새까맣게 무른 채로 터질 것 같은 마음을 더 이상은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가장 감정의 농도가 짙을 때 풀어내고 싶었다. 시간이 쌓이고 나서 조금 잘라내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 살아 있는 나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다. 비슷한 감정을 품는 사람들의 가슴에 조금 더 잘 와닿았으면 했던 마음도 있었다. 마냥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가 아니어도, 단지 하루하루 글을 쓰고 그것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나의 빛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까운 곳에서 살며 닿고 싶었다.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억지로 이겨내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심장과 머리에서 돋아나는 새까만 풀을, 때로는 까슬한 가시가 돋아있기도 한 그것을, 그리고 아주 가끔씩 그 끝에서 피어나는 붉은색의 작은 꽃을 보이고 싶었을 뿐이다.


영원히,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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