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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by 이지원

거울이 망가졌다.

그것을 깨달은 시점은 모든 일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그때 양면 거울의 등판이 떨어졌고, 새된 소리를 지르며 몇 차례 바닥에 뒹굴었다. 쟁쟁거리는 소리가 목 안쪽을 가르는 것만 같았다.

바닥에 드러누운 그것을 주우면 될 일이었는데, 나는 왜 앉은 채로 그것을 내려다보고만 있었을까. 제 기능을 거의 잃은 거울에 추한 몰골이 비쳐서, 나는 말을 잃고 행동을 잃었다.

구겨진 윗옷도, 로션을 바르는 것을 잊어 거칠하게 마른 피부도, 헤어밴드로 아무렇게나 틀어 올리는 바람에 두피가 다 보이도록 납작하게 눌린 머리카락도 끔찍하게 싫었다. 무서웠다.

이건, 내가 아닌데.


조금만 더 버티면 나는 분명히 행복해질 것 같은데,
정말 조금만 버티면 나는 정말….

요 며칠 사이 그래도 무덤덤해진 것처럼 보여서, 이제 좀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나 보다.

그깟 거울 하나로, 간신히 쌓아 올렸던 괜찮음이 전부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모두가 다 버티는데, 나는 못 버티고 이러고 있어.
내가 각진 노트북만을 방 안에서 보고 있는 동안, 사람이 지나가. 시간이 지나가.

엄마, 다 지나가.
나는 아직 봄이 어떤지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다 지나가….

나는 분명히,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을 거라고,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사는데,
내 발밑을 받쳐주는 것이 하나씩 빠지는 것 같아서 무서워.

약해빠진 나를 용서해.
물러터진 나를 용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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