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모든 것들이 기나긴 꿈만 같고, 어쩐지 다른 것만 같은 날이라.
밟아왔던 모든 것들은 기나긴 꿈이다. 취기에 안긴 채로 보았던 길가의 조명이나 사람이 전부 부서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거닐던 곳이 예전 같지 않은 얼굴을 하고, 알던 사람이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보았을 때,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알았고 시간의 다리가 움직이는 것을 알았다. 식은 물, 식은 마음, 식은 사람, 그런 것들이 전부 여기에 있었다.
부쩍 웃는 모습을 볼 수가 없게 되었군요. 머리를 누가 붙잡고 있기라도 한 걸까요, 그리도 웃을 일이 없었을까요. 같은 계절 아래에 살고 있는데 왜 이리도 다른 걸까요. 다리부터 부서지는 기억을 나는 어떻게 붙잡아야 할까요.
새로 피어난 꽃을 보고 미소를 짓기도 전에 비가 내렸다. 축축하게 젖은 꽃잎이 길거리 이곳저곳에 떠돌았다. 내 눈은 봄의 꽃을 머금고 자라는데, 나뭇가지마다 핀 꽃은 이제 축 늘어져 생명이 없다. 거기에도 숨이 붙은 꽃이 있을까. 팔과 목을 늘어뜨린 나무를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 고개를 들어, 눈을 들고 여기를 봐. 한껏 웃어. 지금 여기에 있는 모든 것들이 거짓말이라는 걸 보여 봐.
그러나 말을 모르는 형제가, 비를 맞은 나무가 그것을 알 리 없었다.
내가,
내가, 언제쯤 살아 있게 될까.
가슴 안쪽 가장 여린 곳에 두 겹의 껍데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안에 아마도 심장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숨을 쉬는 것이 이리도 힘든 것이라고, 나는 멋대로 단정 지었다.
목구멍을 열어둔 채로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는 것을, 입안에 든 음식을 뱉어내고 가장 자유로운 모습으로 잠에 빠지고 싶었다는 것을 무시한 채로 살았다. 마음속의 벽장을 몇 번이나 열어젖힌 채로, 끝으로 끝으로 도피하여 나신의 모습으로 피어나는 것을 나는 자유라고 이름 붙였다. 해를 받고,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아무것도 묻지 않은 몸을 드러낸 채로, 그곳에서 홀로.
볕이 잘 드는 곳에 놓이는 것은 화분이 아니어도 좋았다. 땅에 발을 붙이고 뿌리를 내린 채로, 창을 거쳐 쏟아지는 해를 받으며 살고 싶었던 건 나니까. 여태껏 그것을 화분과 꽃과 나무에 녹인 채로 살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러니까 가죽으로 만든 줄에 목을 맡기지 않아도, 애써 자신을 굶기고 가두지 않아도 괜찮은 생명으로 살고 싶었다.
해와 달과 별과 바다를 볼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한 사람이었고,
어디까지나 해를 받아 든 채 살고 싶었던, 그런 생명이었으므로.
그렇게 살면 나는 아마도 꿈에서 깨게 될 거야.
여기에 살아 있잖아.
땅에 뿌리를 내린 채로, 해를 안고 비를 맞으며 살아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