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원 Sep 21. 2024

아무것도 못 느끼는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새벽에만 눈을 뜨는 우울은 그런 영양가 없는 생각을 낳았다.

 환경에 따라 감정이 크게 좌우되는 사람이다. 안정감을 느낄 만한 것이 조금이라도 깨져버리면 크게 흔들려 버린다. 과도하게 예민하고 과도하게 생각이 많다. 날씨의 균형이 조금만 틀어져도 방에 틀어박히는 사람이니 말이다. 몸은 당장이라도 녹아버릴 것처럼 피곤해도 마음은 멀뚱히 눈을 뜨고 있어 잠을 자지도 못하고 맑게 깨어있지도 못하는 상태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마음 놓고 기분이 좋았던 적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분이 좋아질 만한 상황 속에서도 행복이 깨져버릴까 불안해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커튼을 여민 채로 생활하다 보니 달이 얼마나 예쁘고 별이 얼마나 빛나는지도 잊어버렸다. 오늘 밤에는 마음속에 애벌레가 살림을 차린 것만 같다. 남아있지도 않은 기쁨을 갉아먹고 불안이라는 알을 낳는다. 머리를 새까맣게 물들이고 미친 듯이 꾸물거리는 불안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가 없다. 과거, 과거, 과거, 끊임없이 과거를 들고 와서는 또다시 새로운 늪을 만들어내고야 말 거라고 협박을 하며 떠들어댄다. 버림받고 말 거야,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거야. 한심하지, 한심하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나를 둘러싼 세상은 분명히 전과 똑같을 텐데.


 불안의 속삭임에 속아 넘어간 것인지, 그것의 말이 진실인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의심을 하면서도 믿어버리고 만다. 순진하고 순진한 사람이다. 나같이 멍청하고 침침한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을 거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 쓰고 텁텁한 맛이다. 내가 나에게 던진 말은 스스로를 조각내고 천장에 매달아, 불안의 눈이 지켜보는 장식품이 되어버린다.  머릿속에 나는 없고 온통 불안이 들어차 버리는 것이다. 인형과 다를 것이 없다. 사지는 납덩이처럼 무겁고 눈꺼풀만 들어 올려 천장을 보고 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고 물을 마시지 않아도 목이 마르지 않은, 이상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심장에 잔뜩 녹이 슬어버린 듯하다.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정신이 희미하다. 그토록 바라왔던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생생했던 모든 감각이 옅어진다. 손끝도, 발끝도, 의자에 기대앉은 몸뚱이도 마치 기체처럼 느껴진다. 어딘가에 닿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라곤 '나는 무지 형편없고 못난 사람'이라는 우울한 생각뿐이다.


 절대로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될 생각들이다. 입 밖으로 꺼낸 순간 불안이 꺼내 보여준 과거의 늪은 현재의 늪으로 이름표를 바꿔 달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만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다.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라는 것을 아는 주제에, 머리와 마음을 갉아먹는 불안이라는 벌레도 결국 내가 보냈다는 걸 아는 주제에, 자꾸만 도와달라고, 나를 잡아달라고 의지하려 하는 것이 멍청하기만 하다. 숨기고 보기 좋은 핑계를 대며 도망치고 몇 겹의 가면을 얼굴에 덮어씌우면서도 끝내는 숨기지 못한다. 의미가 없다. 누구든 나의 불안을 마주하고 만다. 끈적하고 칙칙한 불안을 토해내는 모습은 이곳에 그대로 기록되고 만다.

아, 차라리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더라면 좋았을까? 영양가 없는 생각을 불안의 틈새에서 꺼내었고 그 순간 지나갔던 수많은 행복의 꽃이 피어났다.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간다. 분명히 행복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으나 불안의 몸에 눌려 제대로 이름을 부르지도 못했던 수많은 행복들이 꽃잎이 되어 흩어졌다.

한 줌의 행복이라도 느끼려면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서는 안 되겠다.

영양가 없는 생각은 기억의 저편으로 흘려보내기로 했다.


 그렇지만, 찾아온 행복을 온전히 즐기지도 못하면서 행복을 기록하겠다니. 그런 말은 어쩌면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록하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우울밖에 없지 않은가. 먼지구덩이에서 뒹구는 감정들을 누가 소중히 보듬어 안을 수 있을까? 잠재우고 버려야 할 감정이니 결국은 던져지고 말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따뜻함을 전해야 할 텐데. 온기라고는 없는 축축하고 차가운 글이나 쓰고 있으니 과연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글쓰기가 맞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괴로움을 토해내고 몸을 비틀어대다가도 아침이 밝아오면 얌전히 하루의 머리 위를 걷는다.

작가의 이전글 하고 싶은 것 찾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