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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Sep 23. 2024

내가 나다울 수 있게

 내가 나다울 수 있게, 나는 나를 먹이고, 양치와 세수로  잠을 깨우고, 새로 빨아 보송하게 말려둔 옷을 입히고, 원하는 느낌으로 꾸며낸다.

밖에서 분주하게 일상을 보내다 하루 끝에 도달했을 때는 따뜻한 물로 씻기고 좋은 향기가 나는 잠옷을 입힌 뒤 이불을 덮어 잠을 재운다.


기숙사에서 살다 보면 가끔 따스한 집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다녀왔습니다." 하고 문을 열면 어머니가 해 두신 구수한 저녁밥 냄새가 나는, 그런 풍경이 그리워진다. 미닫이 현관문을 열면 사랑하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뛰어나오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반가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맛있는 걸 먹자며, 어서 가방 내려놓고 손을 씻고 와서 식탁 앞에 앉으라고 따스한 손길로 등을 두드려주시던 부모님의 손길이 그립다.

아버지는 항상 내가 오면 맛있는 것을 사 주셨다. 학교에선 이렇게 맛있는 걸 먹을 일이 잘 없으니  많이 먹고 가라고, 사랑이 가득 담긴 눈길로 나를 바라보신다. 음식을 드시다가도 웃음을 머금고 얼마간 가만히 나를 바라보셨다.

지나고 나서야 그 눈빛이 가슴속에 와닿는다. 사랑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함께 있을 때는 깨닫지 못하다가 꼭 부모님과 떨어져 있을 때면 그 눈빛이 절실해진다.  입학 초에 두려움을 누르고 용기를 내어 학교의 편의점에서 처음으로 음식을 샀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정말 행복해하셨다. 역시 내 딸이라고, 참 대단하다고.


일주일을 보내다 보면 가슴이 쓰릴 때가 많다. 방문을 열면 나의 흔적만이 가득하다.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나간 흔적이 잔뜩 널브러져 있다. 고생했다고 등을 어루만져 주시던 그 손길은 내가 스스로 어깨를 감싸 안는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렇지만 왜 나의 손길에는 온기가 없을까. 몇 번이나 안고 쓸고 토닥거리기도 해 보았지만 왠지 모르게 몸이 시리다. 나는 어디에도 투정을 부리지 못하고 늘 마음속에서 기댈 곳을 찾는다. 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몇 번이나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고 마음속으로 펑펑 울어도 본다. 뒤돌아선 나를 어르고 달래며 제발 나를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납작 엎드려 애원한다.


나는 성장하면서 나를 누르는 방법을 터득했을 뿐, 내면의 어린아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깊은 곳에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적어도 혼자 있는 곳에서는 나를 최대한 풀어놓으려 하는 편이다. 해이해진다거나 완전히 방치하는 것이 아닌,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최대한 들으려 한다는 뜻이다. 억눌려 있던 감정도, 괴로움도, 자그마한 행복도 모두 듣는다. 적어도 나의 앞에서는 최대한 내가 나다울 수 있도록 한다.

 

화장을 지워야 피부가 숨을 쉴 수 있는 것처럼, 내가 가진 모든 페르소나를 잠시 내려놓고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마음이 곪지 않도록.


성장한 나는 내면의 어린아이를 돌본다. 같은 레토르트 식품을 먹더라도 선택지가 있다면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묻고 답이 정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어떤 옷을 입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고, 가능하면 그 결정을 따른다. 좋아하는 향이 담긴 향수를 뿌리고 좋아하는 향의 로션을 바른다.

눈물이 흐르면 다그치지 않고 그냥 둔다. 먼지가 쌓여 탁해진 감정을 온전히 흘려보낼 수 있도록 부드럽게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을 가진다. 이따금씩 긴 꼬리를 남기고 떨어진 눈물을 닦을 뿐이다.


잠들기 전까지 나는 나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스스로를 잃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간다.

부족하더라도 온기라는 것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꼭 껴안은 채로 살아간다.

스스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가 너무나도 어렵지만, 그래도 내가 조금이나마 나를 위한다는 것을 깨달아줬으면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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