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주 심기

by 이지원

3개월 간 이어져 왔던 세 개의 프로젝트는 모두 끝을 맺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등에 업은 채로 걸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었고, 그래서 손을 내어줄 형편이 되지 않았다. 나는 겉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 좋게 웃어 보이고, 어떻게든 끝마치겠다고 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두가 원망스러웠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닌데, 나의 과제이지만 이들의 과제이기도 한데, 나는 왜 매번 이렇게 등이 굽은 채로 살아야 하는 걸까. 무르고 지독한 환멸과 증오를 입에서 굴리며 밤을 지새웠고, 밥을 입에 넣는 법을 잊었다. 끝까지 나는 나를 온전한 선으로 두었고, 주변의 사람들을 악으로 구분 지으며 짧은 생각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나를 놓지 못한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그림대로 이끌어 나가야 했다는 고집이 있었기에 마음 놓고 맡기지 못했겠지. 나에게는 나만의 기준이 있었다. 원하는 그림이 명확했고,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지켜 나가야 한다는 완강한 고집이 있었다. 그래서 뒤를 돌아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나누어주지 못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완벽하게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그래서 입밖으로는 곧 죽을 것처럼 곡소리를 내면서도 막상 노트북을 열고 나면 집착에 가까운 의욕을 뿜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까?'의 답은 이미 나의 손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과제를 제출하고, 곧 있을 기말 시험범위를 또 밤을 지새워 정리하고 나서야 침대에 누웠다. 새벽 여섯 시. 누군가는 잠에서 깨어 활동을 시작할 시간. 어김없이 커튼의 틈으로 푸른 박명이 흘렀고, 버스와 오토바이가 먼 곳에서 달리고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집중이 풀어진 뒤의 이질감이 나를 맞아들였다. 내가 몸을 담은 이곳은 마치 다른 사람의 방처럼 보였다. 새로운 사람의 눈으로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내가, 왜 이렇게 힘들까.


두 눈을 바로 뜬 채로 뻣뻣한 머릿속을 헤집어 단어와 문장을 골라 잡았다.


뭔가 준비하고 있는 거야. 그런 기분이 들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가 날 기다리고 있어. 그게 죽는 걸까? 아니야, 확실히 죽음은 아니야. 저 먼 곳의 나는 틀림없이 살아 있어. 그런데, 이제는 바람이 그리 불어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아. 더 이상 어딘가로 옮겨지지도 않아. 발에서 돋아난 뿌리가, 어쩌면 나의 몸보다도 더 긴 뿌리가 땅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튼튼해 보여.


천장을 올려다보는 눈 속으로 푸릇한 식물이 다가왔다. 얕은 꿈을 꾸었을지도 모른다. 땅밑으로 뿌리를 뻗친 채 사는 식물을 보았다. 그때 하나의 단어를 떠올렸다. 삶을 이어가며 끊임없이 던졌던 질문이, 그제야 정말로 매듭을 짓는 것처럼 보였다.




아주 심기.

나는 아주 심기를 준비하고 있구나.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고 있구나.






keyword
작가의 이전글족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