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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잡아먹힌 밤

by 이지원

시간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질 때가 있다.

그 누구도 잘못한 것이 아닌데, 뭔가를 책임져야 할 것만 같다. 불안이 멈추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붙잡고 버티려 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펜을 들었고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날 다독일 수가 없다. 등 뒤가 뜨겁다. 심장이 부르르 떨리고 손끝과 발끝에 힘이 들어가 말린다. 땅을 움켜쥔 발끝의 힘을 풀어낼 수가 없어 나는 또다시 불안해졌다. 자꾸만 우그러지는 손을 간신히 펼쳐내 글을 쓴다. 아니, 글을 쓴다기보다는 감정을 배설하는 것에 가깝겠다. 심장이 말라간다. 숨을 쉬는 것이 어렵다.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기분이 어떤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그리려 했는데, 펜을 들어 선을 긋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손이 뻣뻣하게 굳다가 불안하게 떨렸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공포에 압도되었다. 그러나 그 불안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었다. 호흡의 리듬이 잘게 부서졌다. 후, 후, 하고 뜨거운 것을 불어 식히듯 짧은 숨을 연신 내쉰다. 정신이 끊기다 맑아지길 반복했다.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재생했다. 그런데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이 흘러나오려는 순간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강박적으로 하나의 음악만을 들으며 예측 불가능한 것을 예측이 가능한 것으로 바꾸었다. 벌써 몇 번째 듣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낯선 음악이 나오게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지겨움은 이미 내 머릿속에서 희게 덧칠되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른 날은 몰라도, 딱 오늘만큼은, 하다 못해 이 순간만이라도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것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그 무엇도 나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또 흔들리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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