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연민에서 벗어나다

by 이지원

꽤 오랜 시간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글을 쓰는 감각을 잃을까 두려워 몇 편의 조각글을 구상해보기도 하고, 무언가를 읽는 것에도 소원해진 것 같아 다른 사람의 글을 읽기도 했다. 내내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도 지겨워 밖으로 나가고, 잔디밭에서 뛰노는 작은 나비를 새 친구 삼아 만날 적마다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9월 치고는 지나치게 뜨거운 햇볕을 못 느끼는 것도 아니었고,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의 감각은 언제나 예민하게 깨어 있었고, 글은 언제나 쓰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이라도 쓰기 위해 노트북에 앉는 순간부터 마음이 텁텁한 먼지를 뒤집어썼다. 무엇을 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온종일 같은 음식만을 씹어, 이제 맛조차도 느끼지 못하게 된 듯한 기분. 끝도 없는 굴레에 갇힌 듯한 기분. 그런 퍽퍽한 기분이 찾아올 때면 나는 책상에서 멀어져 누운 채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오늘에야 나의 글이 물리는 이유를 찾았다.


지긋지긋하게 트라우마를 곱씹고 떠올리는 것. 이제껏 내가 해 왔던 것이었다. 어린아이가 "날 좀 알아줘!"라고 보채듯이, 넘어진 상처를 괜히 자꾸 들춰 보며 눈물을 글썽이듯이.

이곳에 막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내 마음에는 상처가 많았다. 가장 민감한 부분은 역시나 남이 떠나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 겪었던 고립과 단절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사람과 부대끼며 배워야 할 것들(만남과 헤어짐의 존재, 날이 선 말에 대처하는 법, 스스로를 보듬는 법 둥)을 배우지 못한 채로 성장했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이 모든 것들을 처음으로 배우고 있으니 작은 충격도 거대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떠나갈 사람들은 떠나가지만, 남을 사람들은 끝까지 남는다는 것을, 지나치게 모든 사람 앞에서 잘 보이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불쌍한 사람이야, 불쌍한 사람. 나는 이제껏 써 왔던 글에서 그런 것을 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염없이 자신을 가엾게 보고, 앞으로도 불행할 것처럼 만들었다. 인간관계의 순리를 모르니 과거에 겪었던 '단절'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앞의 것이 너무 커서 뒤에 따라오는 새로운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구촌 모든 사람들과 손을 잡고, 평생 동안 어떤 갈등과 다툼도 없이 살 수 있다면 왜 세상에는 '다툼'과 '이해'라는 단어가 있겠어.


죽기 위해 노력했던 날들 역시 '단절'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실패하면 결국 고립과 단절의 수렁으로 빠지고 말 테니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실패의 연속인 삶 역시도 버겁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타인은 나에게 관심이 많지 않다는 것을, 혹여나 나의 실패가 관심을 받더라도 잠깐의 요깃거리가 되고 만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정말 나를 응원하는 사람은 나의 실패를 두고 등을 돌리지 않는다는 것도.


그러니 나는 더 이상 불쌍한 사람도, 앞으로 불행할 사람도 아니다. 그저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다. 제 생명이 질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사람. 유별난 것도, 뒤처진 것도 아닌, 그저 보통의 사람.

앞으로 더 살아갈 생명.



여담으로, 요즘은 충실히 스스로를 돌보고 있다. 끊임없이 반복하던 자기 연민이 조금은 옅어졌다는 것을 느낀다. 저녁이 오면 어렵지 않게 몸을 씻어내고, 제자리에 놓여있지 않은 물건을 바로 정리하기도 한다.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억지로 잠을 줄이지 않고, 평소에 시간을 내어 공부를 한다.

나 스스로를 존중하고 돌보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이렇게나 트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야, 나의 머리 위에도 맑음이 다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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