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by 이지원

나를 돌볼 때는 꼭 개나 고양이, 식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돌보곤 했는데, 그게 문제였을까?

돌보는 것 마저도 이렇게나 힘들다니. 남에게 쓸 에너지도 부족한 마당에 나를 키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최대한 쉬게 하려고 했더니 이번에도 가진 것을 다 써버려 껍데기만 남고 말았다. 밥을 먹이는 것도, 물을 마시게 하는 것도, 풀어둔 채로 쉬게 하는 것도 싫다. 책상 앞에 앉히는 것마저도 싫증이 났다. 오히려 남들이 하듯이 밥을 먹이고 몸을 씻기고 옷을 입혀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학대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의 세상에서는 방치가 돌봄이고 돌봄이 방치로 바뀐 것만 같다. 몸에 옷이 닿는 것마저도 싫다.


병일까? 약을 먹고 상담을 받으면 좀 나아질까? 내가 사는 곳은 꼭 갯벌 같아서, 처음엔 간질간질하고 좋다가도 어느 순간 발이 푹 꺼진다. 최근 우울을 느끼는 빈도도 훨씬 줄었고, 사람을 대할 때에도 괜찮았어서 이제는 보통 사람의 기준에 거의 닿아 있다고 느꼈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여전히 낫지 않은 병이 마음 안에서 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자해도 하지 않고, 자살충동도 느끼지 않는다. 죽음의 품이 편안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죽음에도 기댈 수 없고 자해에도 기댈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더 괴롭게 한다.


왜, 어디 한 편에라도 기대면 안 되는 거야?


구부정하게 등을 굽히고 누운 채로 물었는데, 그 누구도 답해주지 않았다.


오래 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대로 죽어 남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다. 나를 돌보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더 피곤하고 괴로운 일인데, 내가 죽어 반쯤 썩은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면 나는 이 괴로운 짓을 계속해야 한다. 어쩌면 아직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억지스러운 희망을 발명해서 남과 함께 사는 미래를 꿈꾸고, 그 속에서 행복한 줄만 알고 사는 것마저도 지겨워 퍽퍽한 눈물이나 훔치고 말았다. 아무것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을 터였다.


그래도, 차라리 병에 걸린 것이었으면 좋겠어.


차라리 병의 그림자에 가려진 것이라면 희망이라도 품을 수는 있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나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있으니까. 그런데, 내가 만약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었다면 낫는다는 말마저도 쓸 수가 없게 되어버려. 약이 섞인 물이 몸 곳곳을 돌아다녀도 나를 낫게 할 수 없다는 것. 그것만큼 아픈 것은 없겠지.


나는 하루가 다르게 낮아지고, 하루가 다르게 죽어가고, 자꾸만 사람의 손을 놓치고 땅끝까지 기어들어가 더럽혀지고만 있다. 몇 년을 반복해도 혼자. 단단하게 발이 박힌 채로 섞이지 못하는 듯한 기분이 싫다. 차라리 하얗게 썩어 흙에 섞이면 머리가 아프지는 않을 텐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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