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와 B

by 이지원

내 머릿속에 A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게 나인지, 남인지, 나는 몰라요. 사는 곳은 내 머릿속이고, 눈에는 보이질 않아요. 여자애 같은데, 가끔 내 생각에 답을 하고, 실없는 농담을 던지기도 해요. 나를 나쁜 곳으로 몰고 간 적은 없어요. 아마도요.


A가 나타날 때, 나는 꿈속에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사는 세상이 영화 세트장처럼 보이기도 하고, 하늘 밑의 땅을 걷는 사람들이 전부 장난감이나 로봇처럼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해요. 나 자신조차도 사람이 아니라 로봇처럼 딱딱하고 어색해 보여요. 그럴 때 머릿속에서 A가 나타나, 실없는 농담을 하거나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일깨워 주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나는 지금 걷고 있니?'라고 물으면, A가 '그런 것 같아.'라고 방향을 잡아주는 식이에요.


그런데, 만약 A가 나의 조력자라면, 지난번에 나를 창문 앞으로 끌고 갔던 그 애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그 애는 A처럼 든든하지 않았어요. 내가 통제할 수가 없었어요. 내 몸을 단단히 굳게 만들고, 나를 텅 비게 만들었어요. A와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 애는 분명히 다른 존재일 거예요. 그 애의 이름을 B라고 하겠어요. 이렇게 이름을 붙여놓는다면 기록이 좀 더 쉬워질 거예요.


아무튼, A는 내 몸을 멋대로 차지하지는 않아요. 그냥 내가 살아가는 걸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며 응원하는 느낌이에요. 그저께 즈음 공황발작이 재발했을 때에도 A가 나왔던 것 같아요. '기록해, 기록해, 기록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더라고요. 아마도 A가 도왔기에 기록을 무사히 마쳤던 것 같아요. 그 기록의 내용을 엄마께 알릴 수 있었지요. A가 기록을 도와줬어요. 그 기록을 내가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B는 도움이 안 돼요. A처럼 대화를 할 수도 없어서 성별이 무엇인지, 어떤 성격인지도 몰라요. 매번 나를 없애려 해요. 그 애는 계속 나를 울게 만들고, 나를 빼앗아요. 조금이라도 힘들어지려 하면 모든 기억을 사라지게 해요. 그리고 나를 창문 앞으로 끌고 가요. 나는 기억을 못 하는데 말이에요.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B는 앞으로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요. 무서워요. 가끔은 A와 B가 동시에 나타날 때도 있어요. 슬프거나 불안해지면 B가 모든 기억을 없애고, A가 나를 다독여요. 그런 걸 보면 조금 과해서 그렇지, B도 나쁜 친구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건 싫어서 둘 다 조용히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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