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에 치료했어야 할 것이었을까?
씻고 나왔다.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고 그냥 살았다. 뭘 했는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이 뻣뻣하게 굳은 것만 같다. 다만 굳어버린 머릿속이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겠다. 자꾸만 휘청거리고 쓰러지려 하는 것도 잘 보인다. 사지가 또다시 납덩이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불안이나 우울은 치료해야 하는 병일까? 사실은 잘 모르겠다. 감정이 극한으로 치닫고 매일같이 터뜨리려 하면서도 그래서는 안 된다며 눌러버리곤 한다. 호전되어 간다는 개념도 사실 없지 싶다. 뭘 한다 해도 온몸에 떡하니 들러붙어 있을 것이 뻔하니까. 다만 어떻게든 누르고 참아갈 뿐이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모든 것들이 자극으로 받아들여지고 내가 나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대도 그냥 참았다. 뭘 어떻게 참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삼켜 왔다. 그냥 그렇게 조용히 살았다.
멀쩡한 척이니 괜찮은 척이니 하는 것도 죽을 맛이었다. 내가 나를 버리면 타인도 나를 버리게 될 것만 같아 어떻게든 참아왔건만 이제는 그런 것도 별 소용이 없는 것만 같다. 유기 불안은 아직도 마음을 씹어 삼키고 있는데 나는 손발이 묶였으니 대응할 수가 없다. 마음 안쪽에 손바닥 만한 구멍이 뚫리고 반으로 갈라져도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로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마음이 푸석하게 말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속이 좋지 않다. 그러나 그런 것에 대해서 어떻게 투정을 부리거나 괴로워할 수도 없으니 참 안 됐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꾹꾹 눌러버릴 수밖에.
내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것 같다는 느낌이 꽤나 강하게 들었다. 20년이 넘도록 살아오면서 강하게 자기주장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씁쓸한 숨을 내뱉을 수밖에는 없었다. 좋다면 끌려가고 싫다면 물러서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그러한 모습에 혀를 내두르고 진저리를 치면서도 여전히 주도권을 쥘 만한 기회가 오면 또 멍청하게 물러서고 만다. 원하는 것을 표출하지도 붙잡지도 않았다.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든 맞춰주는 것이 좋았다. 원하는 것을 빠르게 파악하고 원하는 모습을 보이려 애를 썼다. 내가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주제넘는 짓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구태여 말하지도 않았고 간접적으로 표현하지도 않았다. 보채고 조르는 행동은 어린아이 와도 같다고 생각해 이를 물고 참아내었다.
삶이라는 것은,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누르고 참는 것. 힘들고 괴로워도 얼굴에 그것을 그려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렇지만 나를 깎고 갈아내어 표현한 괜찮음은 어른도 무엇도 아닌 그저 슬프고 아픈 상처덩어리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있을, 아프고 아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