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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Oct 16. 2024

새어 나오기 시작한 것

내가 가진 불안과 우울이 끝내는 마음 바깥쪽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밤낮이 뒤바뀐 채로 살았다. 남들의 낮이 내게는 밤이 되었고 그들의 밤이 내게는 낮이 되었다. 그렇게 살아도 큰 이상이 없으니 괜찮은 줄만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속에서부터 문드러지고 있었나 보다.


 겉이 멀쩡했던 내가 벌여둔 모든 일정들이 나를 짓누른다. 숨을 쉬는 것이 어렵다. 문장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마저도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음식을 씹어도 그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의 목소리가 마치 쇠를 긁는 것처럼 날카롭게 들린다. 천장 구석에는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크고 시커먼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믿을 수 없어 눈을 비비면 그제야 사라진다. 그로 하여금 헛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겁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일상에 지장이 생긴다는 것은 압박감의 배를 불렸다.


애석하게도 나를 둘러싼 환경은 나의 처지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시간은 눈길도 주지 않고 흐른다. 야속하고 괴로워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전처럼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순 없으니까.


쉬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적어도 학기 중에는 말이다.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는 이상 내가 가진 괴로움은 인정받을 수 없다. 어디까지나 나의 발목을 잡을 뿐.


어젯밤에는 잠드는 것이 무서웠다. 이러다 정말로 죽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이 그리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또 모르니까.

그렇지만 한편으로 돌아누워서는 그저 이대로 가도 나쁘지 않겠다고, 뻣뻣해진 입꼬리를 올려 씁쓸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너는 네가 스스로 압박감을 너무 많이 만들어. 다른 대학생들도 다 그 정도는 하는데, 너는 자꾸 너를 힘들게 해."


 저녁때쯤 걸려온 엄마의 전화였다.


 "... 나중에,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답하고 도망쳤다.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내가 약하다는 게 진짜가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그나마 나를 감싸주던 가치도, 소중한 사람도 전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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