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때쯤 되어 눈을 뜨면 부모님은 밖에 나가시고 없다. 매미소리가 귀를 울릴 때 살살 베를 문지르고 늘어지게 긴 하품을 한다. 열어두었던 창문으로 짙은 풀내음이 들어왔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침대에서 몸을 떼어내었다.
그날은 밥이 없어서 김치 냉장고에 잠들어 있는 쌀을 깨웠다. 하얀 쌀을 종이컵에 가득 담아 세 번 정도 나른다. 적당한 크기의 스텐 대야에 담긴 쌀을 몇 번 바락바락 씻어내고쌀이 다 잠길 정도로 넉넉하게 물을 부어 냉장고 안에 넣었다. 쌀들이 30분 정도 낮잠을 자도록 둔다.
그러는 사이에 샤워를 한다. 달콤한 우유향이 나는 거품으로 몸을 씻고 반찬은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만들어두신 반찬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점심을 해결하기엔 뭔가 아쉽다. 머리를 북북 감으며 고민을 거듭하다 냉장고에 버티고 있던 양파가 생각났다. 오늘 점심엔 모험을 해보자.
머리를 말리고 옷을 챙겨 입은 다음에는 통통하게 불어 있는 쌀을 꺼내 밥솥에 옮겨 담았다. 쌀이 조금 잠길 정도로 물을 넣고 뚜껑을 덮은 뒤 이제는 정말로 불 위에 솥을 올린다. 추가 빙글빙글 춤을 추니 구수한 냄새가 집안에 가득 퍼졌다. 엄마의 냄새다.
가이드가 되어줄 유튜브 채널의 영상을 틀어두고 요리를 시작했다.
빨간 망 속에 누워 있던 양파를 꺼내 껍질을 벗겨내었다. 알싸한 향이 코를 찔렀다. 새하얀 양파를 도마 위에 올려두고 서툴게 칼질을 한다. 엄마 옆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보았을 때는 마냥 쉽게만 보였던 것이 막상 내 앞에 있으니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조금 땀이 흐르기 시작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양파 하나를 모두 썰 수 있었다.
달궈진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양파를 볶는다. 양파가 투명해지면 간장과 고춧가루, 물엿을 넣어 만든 양념장을 끼얹는다. 양파의 단내가 올라오고 나서 양념장이 잘 스며들면 그때 불을 끄고 들기름이나 참기름 한 스푼을 뿌려 마무리한다.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밥을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양파 볶음을 얹었다. 좋아하는 만큼, 행복해지고 싶은 만큼.
좋아하는 달걀 프라이도 그 위에 얹고 통깨를 뿌렸다. 괜히 웃음이 나온다. 드디어 원하던 모습이 나왔다.
"잘 먹겠습니다."
알맞게 익은 양파에서는 씹을 때마다 단맛이 우러나왔다. 부드러운 달걀과 잘 어우러진다. 짭짤한 양념에 양파의 단맛이 더욱 도드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