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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Oct 21. 2024

가까워진다는 것은

 가까워진다는 것은 곧, 누군가의 뒷면 또한 마주할 수 있게 된다는 것.


 듣기 좋은 소리를 해도 남의 뒷면을 마주하는 것이 썩 달가운 일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멀쩡해 보이던 사람의 목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의 충격이란 얼마나 클까. 그렇기에 숨기고 누르려 하지만 사실 가까워진다는 것은 그만큼 타인의 무거움을 함께 들어주기 위한 것도 있음을 알고 있다.


가까운 누군가를 믿지 못하고 기대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굉장히 실례되는 짓이라고, 언뜻 들었었다. 그렇지만 나는 단지 약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소중한 사람이기에 더욱 괜찮은 인간으로 보이고 싶다. 감정의 손짓에 뺨을 맞아 쓰러지는 인간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정도로 넘어질 인간이 아니라고.


가까워지는 순간이 두려웠다. 새까만 뒷면을 보지 않길 바랐다. 고개를 들어 어깨너머를 보지 못하도록 숨기고 숨겼건만 결국 시선이 등 뒤에 와닿았을 때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받아 들지 못할 것이고 함께 짊어지지 못할 것이 뻔하니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가죽이 하나씩 벗겨지는 것이 싫었고 괴로워하는 모습에 한 점씩 뜯겨나가는 마음의 살갗이 싫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웃는 얼굴뿐이었기에 나의 괴로움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에는 한계가 있기에 누군가의 괴로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안아줄 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 하나 안고 살기에도 벅찬 세상이 아닌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린 외침이 계속되는 것은, 그런 넓은 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하나 안고 살기에도 벅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싶어 하는 것이 본성이기 때문이다. 뭉그러지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감정마저 내 것으로 만들려 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전염되어 버릴 우울이 소중한 사람에게는 닿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그 우울이 자신을 떼어내 달라고 손을 뻗는 곳도 결국 소중한 사람의 품이다. 한계라는 것이 있다는 걸 뻔히 아는데도 단지 머리를 기대고 싶다는 그 이기적인 욕망이 머리를 들고 만다.


사람이 짐승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지, 약한 개체는 도태되고 만다고 했었다. 일찍이 무리 밖으로 버려져 혼자서 숨을 거둔다고 했었다. 나는 몸도 마음도 약한 곳 투성이니 결국 남의 기운도 빠지게 하기에 버려질 것이 뻔하다.


그런 상상을 하고서는 씁쓸한 맛에 조용히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말았다. 썩 맞는 말도 아니지만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았다. 기운을 빨아먹고 우울을 몸에 묻히는 사람을 그 누가 사랑할까. 구멍 투성이인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어떤 의미가 되어주는 걸까?


나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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