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틈새

by 이지원

별빛이 어스름히 깔린 창밖 풍경 속에서 루나는 여전히 현실과 다른 세상의 경계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고양이는 루나의 곁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잠들어 있었다. 낮이 찾아오지 않는 세상. 그들은 잠시 평온한 상태에 멈춰 있었지만, 현실은 여전히 루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에서 깬 루나는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저기, 네가 나한테 하는 말이 다 맞는 것 같아."


고양이는 살며시 눈을 뜨며 루나를 바라보았다.


"맞다니, 뭐가?"


"난 나를 숨기며 살아왔어.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누르고만 살아왔지. 그런데 이제는 너무 지쳐."


고양이는 잠이 완전히 달아나 한층 더 또렷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앞으로는 네가 원하는 걸 말해볼 용기가 생겼다는 거야?"


루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머릿속이 복잡한 감정들로 잔뜩 얽혀 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이 무거운 어떤 감정이 그녀의 몸을 짓눌렀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감각이 작은 싹을 틔웠다.


고양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루나의 머리 위로 올라섰다. 별빛처럼 은은한 광채가 눈에서 반짝였다.


"루나, 왜 자꾸 도망치려 하는 거야? 네가 여기에 와 있는 동안에도 현실의 시간은 멈추지 않아."


루나는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 아, 그렇지."


그러나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허공만 좇았다.


"그렇지만 나는 거기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해. 변함없이 혼자일 거야."


"하지만 네가 여기서 무언가를 느꼈다면, 현실에서도 작은 걸음부터 시작해 볼 수 있지 않겠어?"


루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고양이의 목소리는 여전회 미지근했지만, 그 속에는 그녀가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주변을 밝히던 별빛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앞발로 루나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


"이제 돌아가자. 별빛이 네게 힌트를 줬어. 네 선택은 네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거야. 눈을 감아."


루나는 고양이의 말을 따라 눈을 감았다. 가슴 한편이 무겁다. 돌아가는 게 맞나 싶어 몇 번이나 눈을 뜨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조금만 더 남아있고 싶다. 내가 사라지더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 뻔했다. 새로운 것도 무엇도 없을 것이 뻔했다.

그러나 이미 떠나온 길을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몸을 떠밀어 내는 것이 느껴졌다.


"겁내지 않아도 돼, 루나. 너의 세상에 새로운 누군가가 들어올 것 같아. 네가 잠들었을 때 느꼈어. 천천히 달라질 거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양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나는 그저 고양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돌아갈 수도 없었으니까.




어느 순간 그녀는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희미한 햇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옆에는 고양이가 익숙한 듯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이제부터 조금씩 시도해 볼게."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고양이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좋아, 하지만 눈으로 보기 전까진 못 믿지. 말로만 하는 건 금지야."


루나는 아주 옅게 미소를 지으며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알겠어, 천천히 하나씩 해 볼게. 지켜봐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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