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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 Aug 26. 2024

[에세이] 영혼을 팔아 돈을 버는,  
나는 직장인

모든 것에는 댓가가 있다.

남의 돈은 쉽게 먹는게 아니다.

이 회사의 주인은 따로있다.

고로 나는 주인의식을 버려야 한다. (주인이 몹시 싫어한다)

이 당연한 말이 가슴에 꽂혔다면 그때는 어김없이 영혼을 팔까 말까 하는 선택 앞에 있을 때다


2002년 2월 22일

2자가 무성하게 있는 어느 날,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2년전 일이고 나는 지금 23년차 직장인이다.

이쯤 됐으면 후배들에게 존경내지 비난을 받으며 루즈한 회사생활을 할 만도 한데

(실제로 내 선배들은 그랬다)

나는 여전히 신입과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매번 놀란다.  

20년이 넘게 맞이한 월요일인데도 매번 낯설고 나가기 싫은 건 대체 뭐란 말인가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는 이상하게 미친놈들이 많다.

며칠 전에도 팀장이 내 책을 훔쳐갔다. 누가 봐도 책 주인이 명확하게 쓰여 있는 책을 아무렇지 않게 들고 가 자신의 명함을 책갈피 삼아 며칠을 자기 책상 위에 두고 있다. 여름에는 선풍기를 훔쳐갔고, 가끔 내가 없을 때 내 자리에 와서 내 물건들을 만진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내가 없을 때 내 자리를 뒤지는 팀장의 사진을 찍어  현장증거 사진을 보내줬다. 늘 볼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 그것 뿐만 아니다. 팀장은 8시간이라는 긴 업무 시간을 지인들과 통화하거나 웹툰을 보는 데 쓴다. 그리고 늘  자신의 연봉이 너무 낮다고 불평한다. (적어도 팀장 연봉은 9천은 넘을 거다)


사실 팀장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고, 그걸 주변 다른 직원들도 모르지 않는다. 심지어 조직도 그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소름끼치게 두려운 건 그런 사람을 아직도 저 자리에 둔다는 것이다

내가 영혼을 팔까 말까 하는 고민을 하는 시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저렇게 일해도 보직을 달아주는데

내가 굳이 열심히 할 필요가 있을까?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

내 가치관과 조직의 가치관이 상충할 때 조직의 가치관에 부응하는 사람은 흥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주장하는 사람은 망한다. 난 전적으로 후자다. 어렸을 때는 조직이 내 생각보다 무조건 더 나은 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바른 판단을 하고, 옳은 결정을 하며,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을 것이다 라는 게 내 전제였다. 그러나 20년을 지내다 보니 사회라는 곳은 특히 조직의 의사결정권자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판단을 하고, 중간관리자들은 고민 없이 상위자들의 결정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며, 이런 것들은 도덕적 판단과 크게 무관 하다는 걸 수시로 깨닫는다.


오늘도 도덕적 양심을 팔아, 내 영혼을 팔아 저들의 기대에 부응해 일신의 안위를 챙겨볼까

(팀장도 노는데 나도 놀까)

아니면 내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선택을 해야 할까

(팀장이 놀던 말던 나는 내 업무에 여전히 충실해 보는)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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