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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

"완벽을 기대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

by 이도한

우연한 계기로 두 남녀가 만난다.

그전까지는 각자가 살아가던 우주에서

두 사람은 서로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만남이라는 우연한 사건은

두 개의 우주를 통합한다. 무에서 유가 창조된다.

그렇게 두 개의 우주는 처음으로 교집합을 만든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개 처음에는 서로를 크게 인식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서로는 아직까지 그저 떠돌아다니는

전혀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 덩어리일 뿐이다.


오늘 집 앞을 거닐다가 우연히 마주친 행인,

그 사람이 목줄을 채워 산책시키던 귀여운 강아지,

집 앞 산책로에 빽빽이 들어선 가로수,

밤을 환하게 비춰주는 전봇대 같은 물체들과

그 무엇도 다를 게 없을 정도이다.

서로를 인식하고 제대로 들여다보기 전까지

모든 사람들은 서로 딱 그 정도 의미로 남아있는다.


그러다가 또 어떠한 우연한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며,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우주를 들여다보고 싶어지고,

나의 우주도 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시작된다.

그것이 시작되고 있는지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처음에는 서로를 신기하게 생각하며 알아가다가

점점 마음이 깊어지고, 그들은 서로의 우주를

기다란 끈으로 꽁꽁 묶어놓고자 한다.

그 순간만큼은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을 장애물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 사랑의 감정은 영원할 것 같다.

이 사람은 평생 우리의 곁에 머무를 것만 같다.


하지만 시간이 더욱 지나 그렇게 이상화했던

기대는 무너지고 만다.

너무 다른 두 우주의 연결은 충돌을 낳고,

충돌은 결국 폭발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서로를 더욱 가까운 거리에 결속시키고

끈을 더 단단히 조일수록, 두 우주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결국 그렇게 구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에 처음으로 생채기를 남기기도 하고,

이상화했던 대부분의 것들이

그저 상상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로 다른 두 우주가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영원히' 함께 있기 위해서는

되려 결속의 끈을 느슨하게 묶어 놓아야 한다.


때로는 그 끈을 통해 서로에게서 멀리 떨어지기도,

충돌하여 폭발하기 직전까지 가까워지기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느슨한 결속을 유지해야 한다.


참으로 모순적이다.

도대체 사랑이란 게 무엇이길래 이토록 어려울까?

불완전한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

사랑은 어떠한 의미를 가질까?




사랑의 본질: 불완전하기에 완전한 것


사랑은 완전하지 않기에 아름답다. 우리는 종종 완벽한 사랑을 꿈꾼다. 모든 결핍이 채워지고, 모든 불안이 사라지며, 언제나 기쁨과 행복만이 가득한 사랑을 말이다. 그러나 그런 사랑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불완전한 존재들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결핍을 나누고 그 속에서 새로운 온기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자신의 결핍과 공허와 외로움을 달래는 수단으로 여긴다. 하지만 사랑은 그것을 채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나의 공허를 채워주고 나의 외로움을 덜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결핍을 되돌아보고, 그 결핍과 공허를 채울 수 있도록 에너지와 용기를 나누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채우는 행위 자체는 오롯이 각자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결핍을 오직 상대를 통해 보완하려는 순간, 그 사랑은 결국 부담이 되고, 상대방은 채울 수 없는 무언가를 강요받게 된다. 그런 사랑은 금이 가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사랑은 서로의 불완전함을 채우도록 상호작용하고 돕는 과정이다. 결코 나를 완벽하게 완성해 줄 존재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다. 타인은 나를 완전하게 만들어줄 수 없다. 타인은 절대로 나의 뿌리 깊은 공허함과 외로움을 채워줄 수 없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더욱 성숙해지고, 더욱 깊어지며, 더욱 너그러워진다. 하지만 그 과정은 상대를 소유하려는 욕망이 아닌 다른 의지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개체로서, 서로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함께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인 교류를 넘어, 두 사람이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하지만 그 조화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처음에는 환상 속에서 시작되지만, 점차 현실을 마주하며 성장한다. 그 환상이 깨지는 순간부터, 사랑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




이상화와 환상의 붕괴
: 진정한 의미의 사랑의 시작


사랑은 언제나 이상화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나의 꿈과 기대, 그리고 나의 결핍을 투사한다. 그 사람이 나의 모든 결핍을 채워줄 완벽한 존재라 믿으며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환상은 점차 사라지고, 이상화했던 모습이 아닌 진짜 상대방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이 순간 많은 사람들은 사랑이 식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이는 사랑이 끝난 것이 아니라, 사랑이 '드디어' 현실 속으로 들어왔다는 신호다. 상대방이 더 이상 내가 꿈꿔온 이상적인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 사랑은 첫 번째 시험대에 오른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선택을 해야만 한다. 상대방이 더 이상 이상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며 떠날 것인가,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더욱 깊고 고차원적인 사랑을 시작할 것인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이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며,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랑은 그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를 보듬고 성장하게 한다.


이상화가 사라진 자리에 신뢰가 자리 잡고,

환상이 사라진 자리에 진정한 애정이 피어난다.




사랑과 고통: 불완전함을 감내하는 용기

사랑은 기쁨과 행복만을 주는 신비의 묘약이 아니다. 때로는 실망과 깊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겪기도 한다. 사랑이란 상대방을 통해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과정이다.


사랑은 서로의 심연을 가감 없이, 그리고 아주 적나라하게 들여다보게 해주는 거울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약점과 결핍과 불완전함을 더욱 선명하게 마주하게 된다.


사랑은 서로가 성숙하고 성장하는 과정이다. 그 성숙과 성장에는 필연적으로 성장통이 따른다. 상대방이 나의 기대와 다를 때,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혹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고통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 고통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정면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한층 더 깊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고통이 서로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랑은 상대방을 통제하거나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상대방에게 '너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사랑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사랑은 고통을 감내하는 용기이며, 한없이 부족한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배우게 된다.




사랑과 자유: 소유가 아닌 존중


사랑은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사랑하는 사람을 내 곁에만 두고 싶어 하고, 나만을 바라보게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랑은 상대방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많은 관계가 집착과 통제 속에서 망가진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상대방을 더 강하게 붙잡고 싶어지고, 내 뜻대로 행동하기를 바라는 욕망이 커진다.


하지만 사랑은 상대방을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어떻게 각자가 평생을 구축한 전혀 다른 우주를 서로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내 곁에 붙잡아 두고 싶은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때로는 사랑하기 때문에 놓아주어야 할 때가 있다.


상대방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이상 행복이 아닐 때, 혹은 상대방의 길이 나와 다른 방향을 향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행복, 그리고 서로의 장기적인 행복을 위해 기꺼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랑의 완성: 떠날 수 있는 용기

사랑은 때로는 떠날 용기 또한 필요로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심지어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싫다고 하더라도, 오롯이 상대방의 행복과 안위를 위해 조용히 자리를 떠나 줄 수 있는 그런 용기를 포함하기도 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내 곁에 머물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더 행복할 수 있도록 기꺼이 자유를 내어주는 것이다.


사랑은 결코 상대방을 통해 나를 완성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란, 서로가 독립된 존재로서 서로를 바라보고, 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이다. 사랑은 서로의 부족함을 서로를 통해 채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함께 나누고 각자가 그것을 채우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사랑은 완벽하지 않으며, 완전할 수 없다. 그렇기에 더 아름답고, 더 의미 있다. 불완전한 존재들이 서로의 결핍을 보듬으며 만들어가는 관계. 완벽하지 않기에 아름답고, 불완전하기에 더욱 빛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하다 보면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때로는 그 괴리감에 절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가 있다. 결국 우리 인간은 사랑 없이는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


사랑은 우리를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 모든 아픔과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따스함과 희망이 불완전한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낱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사랑을 결코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이며,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 그 사랑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진솔한 감정표현이며,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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