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도한 Jun 12. 2023

현명한 삶의 태도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살아감에 있어 정답이라는 것은 없다.

진부한 말이지만, 중요한 말이다.

우리가 바라는 삶의 해답이라는 것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어떠한 종교도, 철학도

감히 정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삶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다만, 굳이 몸의 모든 힘을 빼고 있을 필요는 없다.


인생은 광활한 바다 위에서의 여정이다.

원하는 방향으로 미약한 헤엄을 쳐볼 뿐이다.

그 헤엄은 바다의 파도에 비해서는 한없이 미약할 뿐이다.


이 여정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수많은 파도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받아들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우리는 각자의 나침반을 쥐고 열심히 헤엄치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저 힘을 빼고 가만히 누워있는다.


가만히 누워 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불안하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파도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전혀 모르기에.

끝내 도착할 곳이 어디인지 모르기에.


어딘가로 도착하길 간절히 원한다고 한들

아무리 그 방향으로 미약한 헤엄을 친다고 한들

파도의 방향은 예측할 수 없다.

파도의 흐름을 거스를 수도, 방향을 바꿀 수도 없다.

거대한 파도의 힘 앞에 우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굳이 헤엄치지 않고 몸에 모든 힘을 빼도

결국엔 우리가 바라던 그곳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기엔

우리의 마음은 생각보다 불안정하다.


모든 몸에 힘을 빼도 불안하지 않기 위해선

종교적인 그것보다도 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불자들은 그 믿음을 수련하는 자들이다.

독실한 크리스천들도 결은 비슷하다.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자신이 택한 믿음에 대한

회의감과 의심이 그들의 머릿속을 혼란케 하더라도

그들은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매 순간 거친 전투를 치른다.


그렇게 절대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몸에 힘을 빼고

파도의 흐름에 몸을 온전히 맡겨도

전혀 불안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구태여 힘을 빼며 헤엄을 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사는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울 것이다.

우리 모두 결국 그것을 바라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질 때야

비로소 종교적인 혹은 영적인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우리는 결국 그제야

종교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 강렬한 믿음에 대한 욕망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수나 붓다가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라는 파도의 변덕스러움에

전혀 불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세상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을 가진 이들이 아니다.


이렇게 너무나도 평범한 우리에겐

현자들이 끝없는 수련을 통해 단련시킨

단단한 믿음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저 계속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헤엄을 치면 된다.

물론 아무리 열심히 헤엄을 쳐도

내가 가고자 했던 방향에서

자꾸 멀어지기만 할 수도 있다.

파도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쳐주지 않기에.


그렇다면 세상이라는 파도가 제시하는 쪽으로

헤엄치는 방향을 바꿔볼 것인가?

그렇다면 속도는 가속이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세상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해 보며 이번엔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그곳을

한 번 신나게 구경해 볼 것인가?


혹은 결코 닿을 수 없는 목적지만을 갈구하다가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채 육체의 명이 다해

세상을 뜰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초 내가 선택했던 방향으로만

꿋꿋이 헤엄을 칠 것인가?


이 또한 우리의 선택일 뿐이다.

둘 중 어떠한 선택도 정답은 없다.

두 선택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며, 아름답다.

또한, 삶이라는 여정에 있어 우리는

이 두 가지 선택을 수도 없이 번갈아가며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전자라면 역시 세상을 믿고

파도의 흐름을 타보길 잘했다며 기뻐하면 된다.

후자라면 그래도 그곳을 향한 나의 헤엄은

그 자체로 의미 있었다고 믿으면 된다.


지금의 나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다만, 파도가 그 헤엄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력을 다해서 헤엄쳐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면 파도의 방향대로

잠시 몸을 맡길 것이다.


그렇게 바다 위를 둥둥 표류하다 보면

또 다른 섬이 보일 것이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아름다운 섬이

분명히 내 눈앞에 보일 것이다.


그 섬을 향해 또다시 헤엄을 칠 것이다.

그러고는 같은 과정과 선택과 의미부여를 반복하겠지.

이 여정에서 미션은 그 섬을 향한 나침반들이다.

가보고 싶은 새로운 섬을 만날 때마다

나는 새로운 나침반을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힘차게 헤엄칠 것이다.

그렇기에, 항상 미션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이다.

미션이 있는 사람은

파도를 거스르려는 오만한 시도를 해본다.

그리고 가끔은 파도의 흐름을 받아들이기도 해 본다.


미션이 있는 사람은

파도를 원망하기도 하며, 반기기도 한다.

그러나 미션이 있는 사람은 크게 불안해하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은 우리에게 어떤 방법도 제시해주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행운의 패턴을 극대화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