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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는 착각

by 이도한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만을 안다."

그는 무지(無知)의 지(知)에 대해 아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전에는 전혀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그간 무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온 듯하다. 그보다 더 나아가, 스스로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항상 무언가를 '확실히' 알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리고 남들보다 조금 더 안다는 것이 내심 자랑스러웠다. 비열하고 처절한, 안쓰럽기까지 한 모종의 우월감을 느낀 순간도 있었다.


더 많은 앎을 통해 개인적인 삶이 풍요로워진 면도 분명 있겠지만, 이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시기임을 느낀다. 그간 지혜가 아닌 지식만을 탐욕스럽게 곳간에 쌓아두고 있었다.


경험을 통해, 연구를 통해, 분석을 통해, 명상을 통해, 독서를 통해, 그리고 사색을 통해 깨달았던 것들을 나는 명확히 알고 있다고 착각했었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믿음은,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믿음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 또한 그저 하나의 믿음일 뿐이었다.


유명한 말이 있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

그 말의 뜻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나 또한 한평생을 그 문장 안에 갇혀있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깨달음의 원천은 타인이 아닌 나의 깊은 심연이었다. 스스로의 모습을 반추하며, 낯선 불편함이 느껴졌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약간의 거북함이 느껴졌다. 그간 내가 품었던 세상은 이 작은 구멍일 뿐이었다. 그 끝에 서있는 감정은 단연 부끄러움이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아무리 다양한 경험을 해도, 아무리 많이 연구하고 분석해도, 머릿속을 좁은 새장 안에 가둬놓으면 모든 것이 한없이 작아질 뿐이다.


열린 사고를 가진다는 것은, 그 새장을 활짝 열어 놓을 줄 안다는 것이다. 그 좁은 새장 안에 아무리 많은 것들을 욱여넣는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정신없이 무언가를 무작정 채워 넣는 것보다는, 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설령 아직은 텅 비어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아는 것이 힘이지만, 때로는 너무 많이 아는 것은, 아니, 알고 있다는 그 착각은, 결국 내 발목을 잡는다




알고 있다는 착각은 변화를 멈추게 한다

“그건 나도 이미 알고 있어”
“그건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어”
“무조건 이 방식이 맞아“
”이게 정답이야“


라는 말속에는 깊은 무지가 숨어있다.


어떤 것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그에 대해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게 된다. 그 짧은 문장은, 새로운 배움과 새로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막는다.


“삶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이런 거야", "저 사람은 분명히 이런 사람일 거야", "원래 무조건 이렇게 해야만 하는 거야"라고 단정 지을 때, 우리는 질문을 거두게 되고, 이해보다는 성급한 판단을 앞세운다.


이는 결국 우리를 지적으로 게으르게 만들고, 타인을 오해하게 하며, 사물을 왜곡시키고, 사건을 투명하게 보지 못하게 한다. 시선을 좁은 곳에 가둔다.


그 좁은 구멍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며, '역시 내 생각이 틀림없이 맞았어'라고 확신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 그리고 그 뒤통수가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달았을 때 느끼는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오묘하고 불쾌하며, 한없이 부끄럽다.


앎에 대한 착각은 자신의 세계를 한없이 좁은 곳에 고정시키고, 새로운 정보나 관점에 대한 거부 반응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 착각은 결국 변화를 거부하게 한여, 삶을 타성에 젖게 만든다. 그 불쾌한 늪으로 우리를 서서히 밀어 넣는다.


세상에 불변하는 진리가 단 하나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라고 하였다.

변화를 거부한다는 것은 결국 평생을 세상과 불협화음을 내며 살아가겠다는 무모한 다짐이다.

절대라는 것은 절대 없고,

무조건이란 말 뒤에 오는 말은 무조건 틀린 말이다.



알고 있다는 착각 뒤에 숨어있는 것들

자신이 확실히 무언가를 안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들은 대화가 아닌 강요와 설교, 공감이 아닌 판단, 성장이 아닌 정체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리고 항상 그 끝에는 비극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건 틀린 생각이야. 내가 아는 게 맞아."

"그건 이미 내가 예전에 다 겪어봤어."

"그렇게 하면 안 돼, 내가 해봤잖아."


이런 말들의 심연에는 결국 “내가 더 잘 안다”는 착각이 자리 잡고 있다. 무언가를 남들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는 생각 뒤에는 오만함, 비열함 그리고 내적 결핍이 자아낸 알량한 우월감이 불쾌한 몸짓을 그리며 알 수 없는 춤을 추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 산 사람이더라도, 아무리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이라도, 그 누구도 타인의 생각이나 삶, 더 나아가 세상의 함의를 전부 이해할 수 없다. 누구도 그 거대한 우주의 함의는커녕, 크기조차 가늠할 수 없다.


삶은, 세상은 늘 예외성과 정신없는 변주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정확히 어떤 행동이나 생각을 왜 하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당연히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가'라는 다소 허무맹랑한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보는 그 순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지금까지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


좁은 구멍에서 빠져나와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그 순간, 지구 표면에서 벗어나 달 위에서 푸르고 둥근 지구를 처음으로 바라본 우주 비행사의 감정을 비슷하게나마 느껴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지한 사람은 이미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해답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느끼고, 질문하고, 의심하고 마침내 침묵한다.

그들이 하는 질문과 의심의 대상에는, 스스로의 생각과 확신, 그리고 신념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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