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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에서 의미를

삶이라는 반복되는 일상

by 이도한

우리가 사는 삶의 대부분은 반복되는 일상들로 채워져 있다.

적어도 타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일상은 그러하다.

카메라로 하루를 촬영해 본다면, 놀랄 만큼 많은 장면이 어제와 비슷할 것이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고, 비슷한 루틴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비슷한 일과 시간을 보낸다.

개개인이 어떤 시기를 보내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에 따라 그 형태는 달라지겠지만, 각각의 삶이라는 서사를 툭 떼어놓고 본다면, 그 한 편의 영화는 대부분 비슷한 씬으로 전개된다.


엄청나게 새롭고, 다채롭고, 특별한 일들은 정말 가끔씩 일어나는 이벤트일 뿐이다.

물론, 살다 보면 큰 변화의 국면을 맞이하는 시기들도 있다. 직장을 구하거나 창업을 하고, 이사를 가고, 새로운 집을 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해외여행을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집단에 소속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등 다양한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그 변화라는 것도 찰나일 뿐이다. 그 또한 머지않아 당연한 것이 되고, 우리는 그 변화에 무뎌진다. 단 몇 주, 몇 달만 지나도 우리는 그것이 큰 변화였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지낸다.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것에 쉽게 적응한다. 언젠가부터 내가 가진 집도, 차도,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도, 참 아름다워 보였던 존재들도 원래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하던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우리는 변화에 무뎌진다. 그렇게 매번 똑같은 일상들이 반복된다고 느껴지는 어느 순간, 가끔은 깊은 회의감과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한다. 생이란 정말로 이토록 무의미한 것인가. 생이란 이토록 지겹고 뻔한 일상들로 채워진 것일 뿐일까 하는 생각들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시선을 멀리에서 가까이, 그리고 외부에서 내부로, 그것도 아주 깊숙한 곳으로 돌려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금 더 미성숙하고 순수했던 시절에는,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을 너무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것이 탈이었다. 지나 보면 별 것 아닌 일에 크게 의미 부여하고, 후회하고, 겁을 먹고, 결정을 미루고, 회피하고, 누군가의 작은 말 한마디에 쉽게 기분 나빠하고, 상처받고, 화나고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지나가는 세월들을 흘려보내며, 더 이상 그러한 미시적인 것들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을 때는, 이제는 삶이 평온하기만 할 것 같았다. 모든 것들이 그저 지나가고, 변화하고, 무뎌질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이 어른인 줄 알았다. 작은 일들에 연연하지 않는 어른들처럼. 쿨해보이는 저 사람들처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또 다른 늪에 빠지고 말았다. 어디까지가 작은 일인가? 이 방대한 우주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내 삶에 큰 일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하는가? 하는 생각들에, 대부분의 것들이 무의미해 보이기만 했다.


이따금씩 겪는 충만함과 행복감도, 고통도 슬픔도,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다채로운 사건들도, 이 모든 피로함과 고통을 감내하게 만드는 어떤 것에 대한 나의 뜨거운 열정도, 허황되어 보이는 꿈도, 삶의 원동력이 되는 강렬한 동기도,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지점에 서있었다. 그때의 나는, 어떤 기쁨과 행복을 느껴도 금세 뿌리 뽑히는 꽃처럼 허망했고, 그 어떠한 열정도 불꽃보다는 환영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해답은 가까이에 있었다. 다시 미성숙했던 유년 시절의 눈을 빌려와야만 했다. 세상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오늘의 날씨와 풍경은 어제와 다르다. 불과 1시간 전의 그것과도 다르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나의 감정들도 시시각각 변한다. 나의 생각들, 삶에 대한 나의 태도, 가치관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시간 단위로, 하루 단위로 수도 없이 달라진다. 내가 매일 상호작용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내가 그들에게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세상이 뻔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다며 삶의 무상함을 주장했던 것도 결국 나의 무지로부터 비롯된 생각들이었다. 감각이 무뎌져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것뿐이지, 그 보이지 않는 세계는 끊임없이 역동적인 춤을 추고 있다.


특정 사람에 대한, 삶에 대한, 세상에 대한, 또는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를 바꿔보며 끊임없이 작은 것들을 관찰한다면, 이 뻔하고 반복되는 일상은 거대한 실험실이 된다. 매일같이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기구들과 재료들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평생이라는 시간 동안 전부 사용해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다. 매일 보는 풍경에 다른 의미를 부여해 볼 수도, 이미 지나간 똑같은 사건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매일 보는 사람에게도 다른 태도를 가져볼 수도, 다른 말 한마디를 던져볼 수도 있다.


한편, 그러는 동안 외부에서 일어는 거시적인 일들은 어차피 그대로 굴러갈 것이다. 그것은 이미 관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미 습관화된 것들은 끊임없이 여전히 묵묵히 그 정해진 경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먹고살기 위한 일들을 할 것이고,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꾸준히 건강 관리를 할 것이고, 투자한 자산들은 계속해서 가격이 변동될 것이다. 이렇듯 그간 쌓아놓은 것들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 행간에 존재하는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 속의 공백들을 나는, 그저 무의미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그 텅 비어보이는 일상들은 여전히 격렬한 춤을 추고 있으니, 기꺼이 그들과 함께 춤을 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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