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퇴사했습니다만

퇴사, 그 후

by 러비

2년 전의 여름. 7월 22일 금요일, 나는 이른 아침 일어나 좀비처럼 회사에 도착한 후 항상 하던 일을 하루 8시간씩 하면서 점심시간까지 포함하면 총 9시간이나 칙칙한 회색 건물에 처박혀 있었다. 아, 이렇게 끔찍할 수가. 밥 먹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면 확보할 수 있는 최대 30분간의 자유시간 동안 나는 회사 주변을 산책했다.


그때마다 내가 마치 회사에 매여있는 꼴이라는 것이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원래 직장이란 게 그런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찬란한 햇살이 비추는 아름다운 날에 어디 가지도 못하고 회사 주변만 빙빙 맴돌던 나의 모습이 너무, 너무, 갑갑했다. 보이지 않는 목줄이 저기 건물까지 이어져 있는 그런 느낌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있나. 원래 그런 거라니까.


나는 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예를 들어, 긍정적인 확언을 한다던가, 좋은 책을 읽는 다던가, 아침 일찍 일어나 부자가 되기 위한 100번 쓰기를 한다거나. 뭐, 나름 좋은 시간들이었다. 열심히 회사 주변만 뱅뱅 맴돌면서 나는 괜찮다고, 편안하다고, 재밌다고 되뇌었다. 산책을 하면서 보이는 계절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하며, 작은 변화에 기쁨을 느끼며(느끼려 애쓰며), 이대로도 괜찮지 않냐고 생각했다.


어디를 오도 가도 못하는 내 신세와 지긋지긋한 회사 일에 염증을 느끼는 내 속의 불만을 애써 억누르면서 나는 인내했다. 정말 어찌나 열심히도 내 감정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인지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애잔하다. 그런 짓을 해도 내가 느끼는 진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무작정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것 같았으니까.


정말이지 미칠 정도로 지긋지긋한 날들이었다. 자유를 박탈당한 채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이 생활을 몇 년, 몇십 년 지속할 생각을 하자니 인생이 끔찍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이딴 게 현실이라니.


정말 애석하게도(진심이다),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었으므로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일단 숨은 쉬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퇴사하던 날, 나는 으레 그렇듯 이른 퇴근을 했다. 다시는 올 일 없을게 분명한 이곳. 정말 지겹기 그지없었던 이 풍경이 마지막 떠날 때가 돼서야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로워진 마음으로, 내가 몇 번이고 영혼 없이 스쳐 지나갔던 그 거리를 걸었다. 회사와 나 사이에 걸려있던 안 보이던 줄이 완전히 사라진 그 순간을 만끽하면서 기쁘기도 하고, 싱숭생숭하기도 했다. 그 '줄'은 사실 내가 내 마음에 걸어둔 족쇄였다는 걸 그때는 잘 몰랐다. 사실 지금도 잘 모른다.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제 자유로운 마음으로 회사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걸 알기 위해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렇게 해서 나는 개인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냥, 이렇게 평생 회사만 다니면서 살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얼렁뚱땅 사업을 시작해 버렸다. 이 즈음에서 날 비난하고 싶은 수많은 독자가 있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사실 나도 이렇게 사업 아닌 사업을 시작하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누구보다도 날 더 많이 비난했으니까.


그렇게 가볍게 사업에 뛰어든 후 나는 어떻게 됐을까? 아마 예상이 갈 것이다. 온라인 스토어로 3개월 만에 월 1000씩 버는 상상을 하며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럴만한 수완도, 경험도 없었고 현실도 녹록지 않았다. 흔한 자기 개발서처럼 퇴사 후 자신만의 일을 하며 '성공' 타이틀을 걸고 책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너는 사업 같은 거 하지 마'의 줄에 선 수많은 인간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달까. 정말 나도 간절히, 정말 간절히 성공을 원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지금의 나는 참으로 애매한 상황이 돼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애매한 상황에 있는 애매한 인간이 쓰는 애매한 글이 될 것이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이미 첫 시작을 한 뒤 여러 개의 애매한 글들을 썼지만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끝날지 나도 모르겠다. 원래 모든 일이 그런 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