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고해(苦海)다
인생은 고해라고들 말한다. 고통의 바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가, 나를 떠올릴 때면 망망대해에서 낡은 배를 타고 길을 헤매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내가 여태 살아온 삶이 그랬다. 모든 게 흐릿하고 길이 어딘지,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엄청 힘들고 불행하게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냥 이 인생이란 게 뭔지, 그 숨겨진 의미에 대해 알 수 없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잘 사는 것 같아서 이런 해답 없는 고민에 빠져있는 내가 이상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항상 이 고통의 바다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도무지 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행복한 시간은 아주 잠시뿐이고, 그 짧은 행복을 누리기 위해 나는 다시 산을 넘고 또 넘어야 했다. 부모님의 삶만 봐도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냥 누구나 그렇게 사는 것 같았다.
왜 이런 세상이 존재하는가? 나는 이 세상에서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가? 철학적이라고 할 만한 질문들이 계속 맴돌았다. 사실 나에게 이 질문은 그냥 철학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는 현재를 극복해내고 싶었기 때문에, 고통의 바다에서 빠져나오고 싶었기 때문에, 나의 현실을 위해서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종교적으로 가도 아리송한 건 여전했다.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도대체 이런 이상한 세상을 왜 만든 것인지.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려다가도 계속 의심이 들었다. 언젠가는 인생무상만 느끼게 하는 저런 철학적인 질문이나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 같은 종교에 대한 신뢰도 다 바닥나 그저 현실에만 집중하려도 해봤다. 현실을 바꾸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의 다 실패였다. 이 현실이란 단단한 벽은 항상 나를 가로막고 있는 듯했고 나는 그저 나아지지 않는 삶에 답답함만 느꼈다.
나는 모든 면에서 자유를 갈망했기에, 그를 위해 현실적인 환경도 곧잘 바꿨다. 혼자 해외에서 살아도 봤고, 오랫동안 해온 전공도 바꾸고, 일도 완전히 방향을 틀어 회사에 들어갔다. 당연히 회사에서 나오는 것도 금방이었다. 이전 화에서 열심히 쓴 것처럼 사업도 시작하고, 사업 방향도 조금씩 바뀌었다. 약점이라고 느끼는 성격을 바꾸기 위해 일부로 나랑 맞지 않을 알바도 해봤다.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모든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말 답이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그건 정말 아득한 절망일 뿐이었다. 누구 가는 그것이 '평범한' 삶이라고 칭하겠지만 정작 나에게는 지옥 같은 삶이었다.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도망쳐온 곳에 낙원은 없다고 하던가. 현실적 환경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한 모든 일들이 사실 도망치기 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내 마음에서 도망치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우울과 좌절과 권태를 가져다주는 이 마음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차라리 이 세상 사람들에게 감정이 없었다면, 더 평화로운 세상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기계같이 해야 할 것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안 한다면 그보다 더 평화로운 세상이 있을까? 물론 조금 재미없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나 역시도 감정이 없었다면 더 편한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럴 것이 확실했다. 사실 내가 이렇게 고통을 느끼는 99%의 원인이 감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감정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정말 성공하고 싶었다. 그러면 이 모든 해묵은 것들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되니까. 자유로워질 테니까. 그래서 나는 세상이 나에게 말하는 '성공'의 기준을 쫓았다. 월 1000만 원, 신라호텔, 명품브랜드, 대저택, 인플루언서 등의 남들에게 보이기 좋은 모든 것들을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성공이라는 것은 당연히 그런 것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성공하기 위해, 이 모든 것들을 갖기 위해 당연히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의 방식을 따라야 했다.
뼈를 갈아 넣는 힘든 노력, 여행 같은 건 생각하지도 말고 일에 매진해야 하고 굳은 의지를 갖고 잠을 줄여가면서 하루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노력하고도 결국 실패하는 사람이 수두룩 하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운'이었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일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나를 벽으로 몰아넣으며 나도 모르게 나와 투쟁하기 시작했다. 쉬고 싶어도 제대로 쉴 수가 없고, 성과가 나지 않으면 불안해서 더 노력해야 할 것 같고, 여행 같은 건 당연히 갈 생각도 말아야 한다면서 나는 내게서 즐거운 것들을 차단해 버렸다.
'가볍게'시작하지 못해서, 모든 크고 작은 실행착오들이 다 무겁게 느껴졌고 그만큼 낙담하고, 그럼에도 일어나야 했다. 오로지 '성공'해야 하니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냥 그것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좌절했음에도 끝내 성공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 그건 정말 집착 수준의 집념이었다. 이것이 부정의 의미이든 긍정의 의미이든 말이다.
또 하나의 원동력이 있다면 그것은 흔히 말하는 '자기 계발' 서적을 읽은 것이랄까. 이 자기 계발서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희망고문이나 마찬가지이기도 하니까. 아무튼 나는 혼란이 극심해질 때면 다시 책을 집어 들고 읽었다. 나는 자기 계발서로 얻을 수 있는 긍정과 부정 중 긍정을 선택했고, 그렇게 내 사업을 이어나갔다. 그 끝이 어떻든지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