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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Apr 24. 2023

추억의 숲길

서홍동 중산간

서홍동은 한라산 백록담(서귀포시 서홍동 산 1-1)에서 시작하여 당근을 거꾸로 세운 것처럼 길게 서귀포항으로 뻗어 있다. 한라산 중산간, 서홍동 선조들의 삶의 터전을 찾아간다. 해발 450 - 800m의 완만한 경사의 숲길이 있다. 산록도로 치유의 숲 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하여 서홍동 숲길-한라산 둘레길을 돌아오는 '추억의 숲길'이다.

서홍동 옛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한라산 중산간을 찾아간다.

숲길에는 참나무, 붉가시나무, 굴거리나무, 편백나무, 구상나무, 삼나무, 참식나무, 동백나무, 참가시나무, 산벚꽃나무 등 150여 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노루, 오소리, 족제비, 다람쥐 등 수천 종의 포유류, 조류, 파충류, 곤충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건강한 숲이다.

굴⁠ 거리나무(좌), 붉가시나무(중), 참나무(우)

또 땅바닥에는 백량금, 겨울딸기, 고사리, 제주조릿대도 무리 지어 자란다.

백량금, 겨울딸기, 고사리, 제주조릿대(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침 도는 방향으로)

숲길은 돌담을 따라간다. 서홍동 마을 공동목장의 돌담(잣담)이다. 옛사람들의 숨결과 얼이 살아 있다. 조선시대 관영 목장의 울타리 돌담을 잣성, 장성이라 부른다. 해발 350~450m 일대의 잣성을 중잣성이라 한다. 일반 우마 목장의 돌담은 보통 잣담이라 한다.

잣담

연자골. 화전민 마을이 있던 곳이다. 1900년경 사람이 살기 시작하여 1940년 경엔 4 가구가 살면서 마을이 생겼다고 알려져 있다. 화전을 일구어 마, 고구마, 조 등을 심고, 목축 및 사냥을 하면서 생활한 흔적이 남아 있다. 집터, 통시, 말방아, 계단밭, 목축지, 사농바치터 등이 확인된다.

연지골 마을 터

말방아. 곡식을 찧거나 가루를 낼 때 사용하던 연자방아다. 판판한 알돌과 둥근 윗돌로 만들었다. 우마를 이용하여 윗돌을 돌린다. 사람이 직접 돌리기도 하였다.

말방아

집터. 네모난 구들(방), 고팡(곡물창고), 정지(부엌)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집터

통시. 제주 지역의 전통 건축에서 변소와 돼지막(돗통)이 함께 조성된 뒷간이다.

통시(뒷간)

제주 밭담. 바람과 토양유실을 막는다. 짐승이 농경지에 침입하는 것을 저지하여 작물을 보호한다. 농지의 경계이기도 하다.

밭담

사농바치터. 사농바치는 제주어로 사냥꾼이다. 사농바치터는 옛날 한라산 숲길을 오가던 사냥꾼들의 쉼터다. 거센 비바람에도 견딜 수 있게 둥근 형태의 허튼층쌓기 한 옛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사농바치터

천연림이 건강한 숲이다. 식물들은 척박한 땅에서도 각자 자신의 역량에 맞춰 햇빛을 찾아 고개를 쳐들고 경쟁을 하면서 살아간다.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나무들이 비바람에 넘어져 뿌리가 드러났는데도 당당하게 주어진 역할을 하며 삶을 유지한다.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이 새로운 가지를 뻗으며 끈질기게 살아간다.

처음부터 천연림이었는지 식생 정비를 하고 있는지, 삼나무 비중이 높지만 혼합림이다. 다양한 식생이 쭉쭉 뻗은 잘 생긴 삼나무와 건전한 경쟁을 하면서 서로 의지한다. 넘어졌다고 괄시하지 않는다. 압수수색도 없다. 조리돌림 하여 퇴출시키려 들지도 않는다.

모든 식물이 서로 도우면서 경쟁한다.

팔이 부러져 굽었어도  '같잖다'라며 비웃지 않는다.  

스스로 광합성을 할 수 없는 지의류가 하얀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나무 둥치를 덮어도 함께 도우며 살아간다. 이끼가 귀찮게 굴고 콩짜개덩굴이 타고 올라도 사기꾼이라 욕하지 않는다. 참나무도, 삼나무도, 굴거리나무도, 참식나무도, 소나무도, 동백나무도, 고사리도, 덩굴식물도, 이끼도, 지의류도 더불어 살아간다.

부러진 채 살아가는 나무(좌), 지의류(중), 콩짜개덩굴과 이끼(우)

추억의 숲길은 한라산 둘레길(동백길)에 닿는다. 100m쯤 떨어진 곳에 편백나무 인공조림지가 있다. 3~40m가 족히 넘는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곧고 미끈하게 자라서 하늘을 가리고 있다. 질서 정연하고 시원해 보인다. 한마디로 잘 생긴 나무다.

편백나무 군락

하지만 숲 속의 폭군으로 군림한다. 편백나무만 빽빽하게 들어선 인공림에는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한다. 공생이란 것을 모른다. 자신보다 힘센 인간에게는 항균, 면역기능이 뛰어난 피톤치드를 뿜어주며 굽신거린다. 그러나 작은 벌레나 곤충류, 저항력이 약한 식물은 자리를 함께 하는 꼴을 못 본다. 이끼도, 덩굴식물도, 지의류도, 고사리도 용납하지 않는다. 낙엽과 열매가 떨어진 땅바닥에는 풀도 없다.

동백길 편백나무 숲

같은 고도에 있는 삼나무 숲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르다. 관목도 교목도 함께 생활한다. 단풍나무가 초록의 싱그러움을 뽐내도 시기하지 않는다. 동백나무가 무리 지어 꽃을 피워도 미워하지 않는다. 굴거리나무가 되바라져도 '우리 숲의 나무다.'라며 감싸준다.

동백길 삼나무 숲

최근 세계유산본부 한라산 연구부는 지난 5년 동안 거문오름 식생 정비지역과 주변 천연림을 모니터링한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거문오름 일대 인공조림한 삼나무를 간벌하여 정비한 지역이 제주 고유의 식생으로 회복되어 인근 천연림의 생태구조와 유사하게 변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삼나무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미간벌지는 간벌지 및 천연림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미간벌지는 삼나무에 의한 수관의 우거진 정도가 높아 유입되는 햇빛 감소로 하층식생 발달을 저해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려 있다.

"제발 가만 놓아둬라. 자유경쟁하게. 이게 공정과 평등이냐."

출발선을 다르게 해놓고 자유경쟁하잔다.


추억의 숲길이 있는 이 일대는 제주특별자치도 교육청 소유 토지다. 이 숲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 (2023. 4. 23)




운동 시간 2시간 36분(총 시간 3시간 52분)

걸은 거리 7.8km

걸음 수 15,640

소모 열량 958kcal

평균 속도 2.9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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