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간관계에 있어서 '손절'이라는 단어가 참 많이 쓰인다.
'손절'이란 주식 투자에서 쓰이는 은어로 손해를 보더라도 적당한 시점에서 끊어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손해를 보고 끊어낸다는 본래 의미보다 '단순히 손을 떼다'는 뜻으로 쓰는 경우가 더 많아지게 되었다.
즉, '손절'은 절교, 절연 혹은 의절을 나타내는 속어로서 마음이 맞지 않는 친구나 친인척 막장 부모 등과의 관계를 끊어내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관계의 깊이가 얕아지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부담스러움을 극복해 보려는 의지가 점점 사라지는 요즘이다.
'안 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정말로 나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은 태어남으로 필연적으로 관계를 이루며 관계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렇게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인간관계 중에는 반드시 끊어내야 할 인연도 있겠지만, 때로는 관용을 베풀고 기다려 주어야 할 인연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관계의 다양한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분별해야 할지는 그리 깊게 생각해보지 않는 듯하다.
그저 불편하다고, 지금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상처받았다고 쉽게 우리는 관계의 손절을 생각하고 실행하기도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손절을 당했으며, 얼마나 많은 관계의 손절을 하였는가?
우리는 왜 상대에게 얼마나 많은 손절을 당했으며, 왜 손절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상대의 손절은 당신에게 과연 납득이 되는 부분인가?
당신이 상대를 손절한 것은 진정 타당한 것이 맞는가?
우리는 각자의 기준과 원칙이 다르기 때문에 '선택'과 '버림'도 각각 다르다.
각자의 생각과 선택, 그리고 삶을 사는 방식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다.
우리도 우리만의 삶의 우선순위가 있고, 상대 또한 그들만의 우선순위가 있기에 그것을 토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상대의 생각과 선택, 그리고 행동은 우리가 바꿀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단지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생각과 선택, 그리고 행동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받은 적이 있는가?
자신의 배려와 도움을 상대가 알아주지 않아 실망한 적 있는가?
작은 실망이 모여 절망이 되고, 결국 관계의 손절로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관계를 정의하는 것의 기준은 사람마다 각자 다르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나의 기준을 강요해서도 안되며, 상대도 나에게 강요할 수 없다.
나와 상대의 기준과 원칙에 맞지 않아 틀어진 관계라면 굳이 손절해야 하는 게 맞는 것일까?
상대의 기준과 원칙을 전부 이해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상대의 기준과 원칙도 나와 다를 수 있다고 수용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맞고 틀리고의 생각에서 벗어나,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배워야 한다.
그러한 마음을 갖는다면, 손절보다는 시간의 기다림으로 관계를 좀 더 한 발자국 멀리 볼 수 있고 기다릴 수 있는 마음도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손절만이 답은 아니다.
당신이 가치 없다고 생각했던 그 관계가 미래에 어떤 시점에서 다시 당신에게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좋은 면이 되었든, 나쁘게 되든 말이다.
지금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상처받았다고 생각하여 쉽게 손절하기 전에 생각해 보자.
그들에게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한 당신은 그들에게 받은 도움과 배려는 없었는지 말이다.
관계 속에는 희로애락이 전부 깃들여 있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상대도 같이 느끼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내 주위의 소중한 관계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너무 쉽게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과연 나만이 상처를 오롯이 받은 것인지,
나만의 기준이 나를 괴롭혔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