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고 위대한

길냥이의 눈

by 홍정임

“파란 눈의 까만 고양이가 어찌나 이쁘던지….”

내가 아는 엄마는 평소에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사오기 전 예전 살던 집에서 함께 한 길냥이의 추억을 곱씹는 얼굴엔 그리움이 묻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디서 왔는지 빼빼 마른 새까만 고양이가 눈에 띄었어. 기다란 소시지를 던져 줬더니 입에 물고는 어디론가 재빨리 가지 뭐야. 뒤쫓아 가봤어. 그곳에 새끼가 두 마리 있었고 어미는 물고 온 소시지를 새끼들에게 먹이는 거야. 자기는 옆에서 새끼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어미가 먹은 게 있어야 젖도 잘 나올 텐데 얼마나 굶주렸는지 앙상한 어미 곁에 꼼지락대며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들이 엄마는 안쓰러웠다고 한다.


그 후, 엄마는 마트에서 장을 볼 때마다 평소에 눈길도 주지 않던 참치 캔을 카트에 담았다고 했다. 따뜻한 밥과 비벼 주먹밥 몇 덩이를 만든 후, 얕은 플라스틱 소쿠리를 밥그릇으로 사용하여 고양이가 자주 출몰하는 근처에 갖다 놓았더니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끌고 와 단란한 식사를 하더란다. 평소엔 새끼를 먹여 살리느라 저는 먹지도 않고 지켜만 보던 어미는 오랜만에 쫓기는 불안감 없이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상을 먹는 것이다.


음식 끝에 정 난다고 했던가. 영특한 동물은 엄마가 외출 시 인기척만 들려도 차 밑에서 나와 고개를 들고 물끄러미 엄마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자신에게 마음을 써 주는 사람에게 경계를 푼 한없이 지극한 눈빛으로.

고양이는 가끔 엄마가 사는 3층 현관 앞에서 머물다 가곤 했다. 엄마가 현관문을 열면 웅크리고 앉아있다가 슬그머니 계단으로 다시 내려가곤 했는데 이웃분들도 엄마의 현관 앞에 있는 까만 고양이를 종종 목격했다고 전했다.

“어떻게 내가 사는 집을 알아냈을까? 그 많은 사람이 사는 아파트에서 참 용하기도 하지.” 엄마는 지금도 의문이다.

사소하지만 위대한 것은 관계 안에서 피어난다. 주는 게 다가 아닌 받고 느끼는 것까지가 온전한 사랑이다. 비록 미물이라도 그들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공감하고 연대하고 같이 나누다 보면 그 작고 미미한 생명체는 진심을 보여 준다. 그건 나를 돌보는 사람을 알아보고 화답하는 것인데, 한없이 연약한 존재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대에게 보답한다. 그 신호들은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배를 발랑 까 보이며 애교를 피우며, 다정히 바라보는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동자에 있다. 한없이 바라보는 깊고 신비한 눈동자를 마주하면 누구라도 길냥이에 대해 품었던 편견이 봉인 해제 된다.


어떤 모임에서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차를 운전하다 보면 가끔 로드 킬을 목격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애도하며 빌어준다는 거다.

“좋은 데로 가라.”

속말이 아닌 입 밖으로 튀어나온 애도는 연약한 짐승의 죽음을 진심으로 아파하고 공감하는 마음의 기도이다.

“그 새까맣고 조그만 것이 어찌나 예쁘던지…. 빼빼 말라 가지고.”

어쩌다 눈에 들어와 함께한 일상을 추억하는 엄마의 얼굴에는 안쓰러움과 그리움이 묻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엄마에게 보여 준 온순하고 지극한 무한신뢰의 눈빛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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