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김장철이 다가오면 속 재료를 사러 재래시장에 간다. 채소가게 몇 군데를 들러 이것저것 재료의 상태와 가격을 꼼꼼히 비교한다. 시장조사가 끝나면 마음에 찜해 놓은 가게에서 필요한 재료를 몽땅 사는 편이다. 몇 푼 아끼려고 무거운 짐을 들고 시장 바닥을 종횡무진 누비기도 힘들뿐더러 빨리 집에 가 재료들을 다듬고 씻고 손질해 놓아야 마음이 한갓지기 때문이다.
무다발을 살 때에는 부피를 줄이기 위해 줄기인 무청을 잘라내고 무만 가져온다. 한 번은 무청을 잘라달라고 했더니 주인이 퉁명스럽게 바쁘다며 나보고 알아서 손질해 가라고 했다. 예전에는 주인이 친절하게 칼로 잘라 줬는데 내가 손으로 대충 꺾으려니 뻣뻣한 줄기가 억세 도무지 끊어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너풀거리는 무 다발을 집으로 가져왔다. 부엌에서 잘라낸 시퍼런 무청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려다 이왕 가져온 거 된장국을 끓여 보기로 했다.
가끔 시댁에 가면 어머니께서 된장찌개를 끓여 주신다. 시래기를 듬뿍 넣은 된장찌개와 들기름을 넣고 오랫동안 뭉근하게 볶은 시래기나물의 감칠맛은 다시 생각날 정도로 별미다. 보통 시래기는 처마 밑 담벼락에 매달려 겨울을 보내는데 어머니는 마당에 자리를 펼치고 뜨거운 물에 한 번 데쳐 한층 색이 짙게 오른 시래기를 널어 말렸다. 말린 시래기는 바지런한 손길로 농사지어 거둬들인 마늘, 된장, 들기름과 함께 박스에 담아 두 시누이에게 보낸다. 물론 나에게도 공평하게 나눠 주신다. 나는 어머님이 해 주신 시골 밥상을 떠올리며 시장에서 사 온 무청을 다듬었다.
우선 두껍고 억센 겉대는 버리고 야들한 가운데 부분만 골라 끓는 물에 푹 삶은 후 건져 찬물에 담가 놓았다. 그래야 쓴맛이 빠진다며 어머니께서 예전에 말씀하셨다. 한참 동안 찬물에 담긴 무청을 건져 물기를 꾹 짠 후 알맞은 크기로 숭덩숭덩 썬다. 된장으로 조물조물 무친 후 간이 스며들 때까지 기다린다. 그동안 멸치 다시 물을 끓인다. 멸치를 건져 낸 다시 물에 된장 밑간이 밴 시래기를 넣고 한소끔 팔팔 끓인 다음 마지막에 송송 썬 대파를 넣으면 완성이다. 세상 쉬운 레시피다.
시원하고 구수한 시래기 된장국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노릇노릇 자반고등어도 구웠다. 어스름 녘이 식구들을 불러 모아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았다. 초등 저학년인 막내아들이 국을 한 수저 뜨더니 학교 급식에서 먹어 본 적 있다며 쓰레기 국이 맛있다고 했다. 아들이 어감이 비슷한 ‘쓰레기’와 ‘시래기’를 순간 혼동한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웃음보가 터져 고개를 뒤로 젖히며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이내 웃음을 가라앉힌 후 “쓰레기가 아니라 시래기야”라고 정정한 후 “시래기 된장국이 참 맛있지?” 하고 재차 낱말을 인식시켜 주었다. 아들은 알았다는 듯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구수하고 부드러운 촉감의 시래기 된장국으로 연거푸 숟가락을 옮겼다.
그 뒤 나는 무를 살 때 무청을 잘라내지 않고 그대로 가져온다. 시래기 된장국을 끓이기 위해서다. 시래기는 식이섬유가 많아 다이어트에도 좋고 칼슘이 많아 골다공증도 예방한다니 안 먹으면 손해다. 겨울철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이 고루 들어있는 시래기는 재료본연이 된장과 잘 어우러져 깊고 개운한 맛을 낸다. 양념 범벅의 요란하고 시끄러운 맛과 달리 고요하고 깔끔한 맛은 더 이상의 다른 양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된장만 있으면 된다. 방금 지은 배토롬한 잡곡밥 한 공기와 푸근한 시래기 된장국이 차려진 따뜻한 가족 밥상.
나는 시래기 된장국을 끓일 때마다 아들의 언어유희가 떠올라 피식 웃는다. 버리면 쓰레기지만 가지고 오면 맛있는 시래기가 되니 한 끗 차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