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일단 떠나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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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의사입니다.
벌써 퇴직한 지 한 달이 지났으니 명확히는 의사였던 사람이겠죠. 주변 사람들은 2024년 마무리를 앞두고 ‘올해도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라고 했지만, 제게 올해만큼은 굉장히 또렷한 기억될 해입니다.
[브레멘 전경. 집 가는 길에 전철 안에서]
일단, 지금 독일에 살고 있거든요.
그리고 독일로의 이주 준비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길었던 탓에 지난 1년간 매일이 다채로웠습니다.
2024년은 로칼 병원(주 1)에서 일한 지 햇수로 3년, 그러니까 의사로 일한 지 총 9년 차인 해였습니다.
그전에는 대학 병원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다 보면 3의 배수가 되는 해에 퇴사 욕구가 솟구친다던데, 저는 그게 6년 째였습니다.
출근하는데 정신 차려보니 여름 반팔에서 겨울 패딩으로 옷차림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분명히 제가 꺼내 입은 패딩인데 언제 꺼내두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아마 지난겨울에 입고 옷장 한편에 걸어두 었겠죠. 지지난 겨울도 그랬을 것이고요.
월급으로 샀던 폭신한 패딩의 엉덩이 부분이 납작해질 정도로 시간이 지났는데, 저는 똑같은 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있다는 게 슬펐습니다. 제 청춘을 병원에 빼앗긴 건지, 가져다 받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에 지쳤던 것은 확실했습니다. 딱 일 년만 숨 좀 쉬어야겠다, 싶어 그 길로 대학 병원을 벗어나 지역까지 바꾸어 새로운 병원에 취직을 했습니다.
새로운 의료진,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환자군.
로칼 병원은 대학 병원과 매우 다릅니다. 대학 병원은 모든 것이 세팅되어 있고, 혹여 세팅이 되어있지 않더라도 백업 플랜이라는 게 존재합니다. 소위 끝병원이라고 하죠.
이곳에서 못하는 치료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안된다고 다들 생각하기에, 어떻게라도 방법을 찾아내지만, 로컬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과장 좀 해보죠.
여름에 계곡으로 물놀이를 갔다고 상상해 봅니다. 한참 물놀이를 하고 나니 라면이 당깁니다. 이때 대학병원 여행사에는 LPG 가스통 및 버너, 라면이 종류별로 준비되어 있다면 로칼 여행사는 인원수보다 두어 개 모자란 컵라면에 낡은 브루스타 정도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물론 성급한 일반화는 지양합시다).
뭐 LPG 가스통을 가줘다 줘도 불 못 피울 사람은 못 피울 거고, 성냥만으로도 큰 불을 피울 사람은 피웁니다. 또, 어떤 라면이 맛있을지는 끓이는 사람의 재능이지요.
요지는 대학 병원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로칼병원은 또 다른 세상이었으며 번아웃과 동시에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저에게 충분한 자극제가 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로칼병원은 의료진이 제한적이다 보니, 응급의학과 의료진이 관여할 수 있는 의료 분야가 더 넓습니다. 덕분에 지난 6년 동안 마주치지 못했던 질병을 로칼에서는 흔하게 보고, 재야의 무림 고수들의 노하우도 배우고, 손이 부족한 곳에서 의료 품앗이 가면서 또 새로운 걸 접하고. 그렇게 정신없이 ‘로칼에서 살아남기'를 하다 보니 또 시간이 후루룩 지나있더군요. 슬슬 로칼에 적응한다 싶었더니 또다시 하루에 다름이 없어졌습니다.
계절의 흐름을, 이번에는 패딩이 아닌, 제 몸을 통해 인식했습니다. 매운 라면이 소화가 안되고, 술 먹으면 다음날까지 숙취가 있고, 다치면 쉽게 낫질 않았습니다.
이상하죠,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왜 도태되는 건지.
영화, 여행, 독서 같은 취미로 찰나의 기분전환이 되지만, 제 삶은 이제 저무는 방향으로 향해가겠거니, 생각이 듭디다.
뭔가 새로운 게 필요한데, 어차피 도르마무처럼 되돌아오는 삶이 덧없게 느껴졌습니다. 우울감이 고저를 달리하며 꽤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재작년 연말에 제 우울감은 최고, 기분은 최저를 찍었습니다. 새해라고 뭐 다를까. 어차피 365일 뒤에는 또... 그때의 나라고 뭐가 달라질 게 있을까.
연말 시상식이나 가요대전 같은 것들 안 본 지 오래고, 유튜브나 넷플릭스에서도 흥미로운 게 없었습니다. 연말에 근무라 가족들(함께한다고 딱히 기분이 나을 것 같지도 않았지만)과 떨어져 숙소 소파에 누워서 흘러가는 시간을 보다가 버킷이라도 세우려고, 작년 다이어리를 펴보게 되었습니다.
스킨스쿠버, 오대악산 등산, 원데이 클래스...
작년 버킷리스트는 반 정도 성공했네요. 할 수 있는 것들로 버킷 리스트를 구성했기에 의도된 달성이었습니다만, 어쨌거나 기분은 나아졌습니다.
그래서 원래 연말연초면 만들던 버킷 리스트를 이번엔 스케일 크게, '인생 버킷리스트'로 진행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기분내기용이었으니까요.
오호라,
해외 살기...?
나쁘지 않은데. 새로워…!
갑자기 생각의 흐름이 물살을 탔습니다.
삶에 싫증이 난 거라면 통째로 바꿔야 할 것 같았습니다. 모름지기 새 술은 새 부대에, 새 삶은 새 나라에.
일전에 부모님이 '기회 되면 다른 나라 가서 살아봐. 낭만 있지 않니?‘라고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갑니다. 연말이고 하니 낭만이라는 단어가 또렷하게 기억납디다. 바로 핸드폰을 들어, 스쳐 지나가는 나라들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미국, 호주, 캐나다'
자타공인 해외 유수인력 흡수국가.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세계의 의료진을 빨아드리고 있습니다. 인종차별? 의외로 '동양 의사'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지 않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동양인의 근면성실 및 상명하복에 익숙한 성정 덕택에, 수술이 잡혔지만 근무조건을 들먹이며 퇴근하는 타문화권 의료진보다 선호된답니다. 좋은 건지 슬픈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장점이겠지요.
문제는 미국, 호주, 캐나다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이 없다는 것. 문화도 음식도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이 많은 곳에서 산다는 것은 한국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의미입니다. 결국엔 코리아타운에서 일하고 적응해서 살겠죠. 패스.
'일본'
이하 동문. 일본어 잘 못합니다. 배우고 싶은 매력적인 언어도 아닙니다. 한국과 가깝고 생긴 게 비슷해서 인종차별 없는 것 외에는 그다지 크게 매리트는 없는 느낌이어서 여기도. 패스.
'유럽'
동유럽 국가의 물가 및 정세 불안, 서유럽 국가의 경제 침체 등은 유럽의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유럽의 젊은 인구 및 전문 노동인구는 미국, 호주, 캐나다 등의 조건 좋은 국가로 술술 빠져나가고 있기에 이민을 받기 위해 적극적입니다.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유럽 연합인 포르투갈, 그리스, 터키 등으로의 투자 이민이 부동산 인플레 등으로 해당 비자 발급이 없어지는 추세였습니다.
뭐, 가서 일하면 되니까. 투자 이민을 고려했던 저는 유럽에서의 취업 이민을 다시 검색했습니다.
영국은 유럽연합 탈퇴국가라 유로 혜택도 없고. 영국 갈 바에는 미국, 호주, 캐나다를 가렵니다. 패스.
스페인(해산물 맛있음)?
프랑스(빵 맛있음)?
포르투갈(과일 맛있음)?
일주일도 넘게 꽤 긴 시간을 각종 이민 법인, 이민청, 외국인청 (그리고 챗 GTP) 등에서 정보를 찾아보다가 드디어 독일의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독일
독일 역시 오랫동안 젊은 인구의 유출이 문제였기에, 다른 유럽 연합 국가보다 빠르게 이민에 관대한 법률 제정한 나라입니다. 이제는 자타공인 '이민국가'로 불릴 만큼 독일로의 이민 루트가 다양해졌습니다. ‘블루카드’는 기술 이민자들이 쉽게 이민할 수 있도록, 그리고 ‘찬스 카드’는 기술 이민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직업을 가지기 이전에 독일에 머무를 수 있도록 특별히 고안된 비자입니다. 일단 비자 발급에 관대한 것이 맘에 듭니다. 일단 독일 통과.
다음은, 한국의 의사면허증을 유로연합 의사 면허증으로 변경하기 위해 알아보았습니다.
좋았어! 생각보다 쉬운데?(아니야)
전공의 수련을 다시 안 해도 된다는 게 제일 매혹적인 요건이었습니다. 대부분 해외국가들은 면허 자체는 인정해 주되, 1-2년 정도의 수련기간이 있어야 독립하여 의료를 할 수 있게끔 합니다. 시간적으로나, 정신적, 체력적으로나 굉장한 장점입니다. 독일에서 면허를 인정받으면 유로연합 모두에서 인정되는 것도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나중에 1-2년씩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김칫국도 마셔보게 되고요.
이쯤 되니 단점들도 좋게 해석되었습니다. 한국과 다른 유럽의 공공의료 시스템, 주치의 제도, 노인 인구를 위한 의료 시스템, 비교적 디지털화가 덜 되어있는 의료시스템. 이 모든 게 제게 기회가 될 수 있겠죠.
(아… 아니라고..!)
마음이 기우니, 독일이란 국가가 궁금해졌습니다.
궁금해지면 진 거라던데.
독일에 가본 적이라고는, 어렸을 때 연구원이었던 부모님을 따라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1년 남짓 살았던 것뿐이 없습니다. 너무 어려서 기억도 없는 그 1년이 저의 독일에 대한 기록의 전부지만, 왜 친근한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 독일에서 찍은 사진 속사과나무밭에 가면, 모든 기억이 살아날 것만 같았습니다. 이 정도면 돌이킬 수 없겠죠.
그렇게 2년간의 독일어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주석 :
[1] 로칼 병원(Local) : '로칼 병원', ‘로칼’ 혹은 '로컬'이라고도 불리며, 폭넓게 대학 병원 근무자가 아닌 경우를 의미한다. 개인 병원을 비롯하여 종합병원 혹은 준 종합병원 등에 일하는 경우가 모두 로칼에 포함된다. 이와 반대되는 경우는 대학 병원 근무자하는 경우로 줄여서 '대병'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