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빠르게 독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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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누군가 '독일어 공부 어떻게 했어?'라고 물어보면, '그거? 독일 가기 전 2년쯤 공부하고 갔어~'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합니다만, 사실 독일어 학습이 2년 걸린 게 아닙니다. 필요한 돈과 이력을 준비하는데 최소 2년이 필요했고, 그 기간 동안 딱히 할 게 없어 그냥 독일어 학습을 시작했을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독일에 와서 언어 충격을 완화할 수는 있었지만, 더 일찍, 더 효율적으로 공부할걸 하는 생각이 매일 들 정도로 어렵습니다.
(전혀 아름답지 않은 독일어 공부)
본투비 언어 취약자인 저에게 독일행을 결정한 뒤부터 언어는 쭉 스트레스였습니다. 나중에는 독일어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차라리 영어권으로 갈껄하고 후회도 했습니다만, 일단 부딪혀는 봐야겠다 싶어 독일행을 바꾸진 않았습니다. 다만 어차피 생활 독일어는 한국에서 마스터하기 어려울 테니, 한국에서의 독일어 학습은 철저히 '독일어 능력시험 점수' 획득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주워들어보니 빠르면 1년 안에 독일어 점수를 만들 수 있다고 하고, 또 비자 및 생활비 등으로 독일 체류 시간을 줄이고 싶으면 한국에서 미리 점수 따오는 게 좋다고 하여, 넉넉하게 2년 정도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헛발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유럽어 시험은 A, B, C 단계로 나뉩니다. 초급인 A단계에서 B, C로 갈수록 고급 독일어를 구사한다는 의미이며, B단계는 내 의견을 표출하고 간단한 토론이 가능한 중학생 정도, C단계는 복잡한 언어 구사가 가능한 원어민 정도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각 단계는 다시 1과 2 단계로 나뉘는데(예 : A1, A2, B1, B2...) 일반 이민에는 B1, 기술이민에는 B2, 대학교는 C1 단계의 언어능력이 요구되고, 제 목표는 B2였습니다. 시험 종류는 목적에 따라 Goethe, Telc, TestDaF 등이 있는데, 저는 많은 사람들이 응시하고, 이름이 독일스러운 Goethe 시험을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게 두 번째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1년~1년 반 만에 점수가 나온 사람들이나 블로그에 글을 쓰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글을 쓸 리가 없겠죠. 결국 Goethe 시험 준비로 6개월간 스트레스 다이어트하고 2번의 시험을 거나하게 말아먹으며 주제파악을 마친 뒤, 비교적 쉬운 Telc로 갈아탔습니다.
하혹시, 독일어 능력시험을 보실 예정인 분들은 비교적 쉬운 Telc를 추천합니다. 어차피 Goethe 나 Telc 나 상관없이 B2 레벨이면 자격요건이 충족되고, 이러나저러나 실생활에선 반벙어리니 진짜 독일어는 독일에서 다시 읽히시면 됩니다.
Goethe B2 시험로 결정한 뒤, 시험 보기 전까지의 과정은 순조로웠습니다. 직업 상의 이유로 학원을 다닐 수 없어서 인터넷 강의, 독학, 개인 과외 셋 중 가격대비 효율적인 인터넷 강의를 선택했습니다. 연초 프로모션을 통해 12개월 프로그램을 18개월 동안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길래 냅다 결제했습니다. 어차피 인터넷 강의로는 문법과 단어 습득에 집중할 요량이었기 때문에 비용적인 면을 우선 고려하였습니다.
추가하자면, 시중 독일어 교재로는 독학하기 어렵습니다. 해외판은 대화식 수업에 맞춰져 있어서 독학이 어렵고, 국내판은 20년은 된 누런 하드커버에 한자가 섞인 명조체로 구성되어 가독성이 낮습니다. 부득이하게 인터넷이 안 돼서 독학해야 할 처지가 아니라면 인터넷 강의를 추천합니다. 외워야 할 부분을 콕 집어서 알려주기 때문에 성문영어책을 사용한 세대로서 인터넷 강의는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렇게 문법과 단어에 익숙해지는데 8개월 정도가 꼬박 걸렸으며, 이때는 모르는 문장을 보고, '독일어군', '독일어가 아니군' 하고 구별하는 게 목표일 정도로 독일어 능력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기 때문에 오히려 싫증 내지 않고 독일어를 꾸준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시험 예문 수준의 글을 더듬더듬 읽으며 생각보다 할만하다고 느낍니다. 그 기세를 몰아 저는 시험을 등록하였습니다.
인터넷 강의 8개월, 정신 차리고 보니 Goethe B2 시험을 결제하고 있었습니다. 시험 날짜는 4개월 후, 공부를 시작한 지 딱 1년이 넘어가는 때였습니다. 20만 원이 넘는 비용을 긁고 나니 시험을 본다는 게 실감이 나서 4개월은 미친 듯이 공부했습니다. 근무 시간 외에는 주말을 마다하고 거의 매일 도서관에서 살았습니다. 살도 많이 빠지고, 초췌해질 정도로 집중했는데, 막상 시험준비 자체는 간단합니다. 시중에 얼마 있지 않은 모의고사 문제집 2-3개와 유튜브에 있는 듣기 모의고사 문제를 시험 전까지 계속 반복했습니다. 읽기 분야는 합격선 근처에서 점수대가 형성되었는데 나머지 듣기, 쓰기, 말하기 분야가 문제였습니다. 다행인 건 Goethe 시험은 각 파트별로 당락이 결정되어 추후에 분야별로 시험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에, 욕심부리지 말고 4가지 분야 중 두 개만 통과 하 자는 마음이었는데 이게 3번째 오류였습니다. (후술 하겠지만, 고민할 필요 없이 전부 다 떨어졌습니다)
듣기.
의외로 귀 트이는데 시간이 꽤 들었습니다. 영어와 같은 로마어지만 발음이 다르기 때문에, 어원이 같은 단어를 '보고' 이해하는 읽기는 수월할 수 있지만, '듣고' 이해하는 데 오히려 시간이 배로 들었습니다.
예로, 'Familie'는 가족이란 뜻입니다. 독일어를 배우지 않아도 단어를 보면 '패밀리', 가족이라는 의미라는 걸 눈치챌 수 있지만, 독일어로는 '파밀리에'라고 발음합니다. 쉬울 것 같아도 '패밀리'와 '파밀리에'의 간격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보고 읽는 것은 되는데 듣기만 하면 귀머거리가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독일어 듣기 자료는 주변에서 많아서 끊임없이 연습할 수 있는데, 저는 넷플릭스에서 독일어로 드라마 보기, 독일 라디오 방송 'Info Radio' 듣기, 그리고 DW.DE 에서 제공하는 lernen Deutsch의 듣기 자료를 사용했습니다. 출퇴근 때는 라디오, 집중해서 공부할 때는 DW.DE, 밥 먹을 때 배경으로는 넷플릭스. 이렇게 매일을 반복했습니다만, 솔직히 1년 동안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옵니다. 제 듣기 능력이 비약적으로 늘었던 것은 모의고사를 준비하면서 듣고 받아쓰기를 하루에 2-3개씩 했을 때였고, 독일어 뉴스 방송이 좀 들리길래 '이제 좀 귀가 트였나' 한 것도, 독일에 와서 처음 들은 '아나운서 발음이 아닌' 실생활 독일어는 전혀 들리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다음은 쓰기.
걱정이 컸지만 의외로 수월한 분야였습니다. 독일어 작문 시험은 반드시 지켜야 할 문장틀이 있기 때문에 그것 외워도 써야 할 분량의 반은 됐습니다. 그리고 각 단어에 알맞은 동사 짝꿍이 존재하는데(예 : Termin(약속) - vereinbaren(잡다)) 그것이 독일어의 유창성과 맞물리기 때문에 잘 맞춰서 몇 문장 구사한다면 큰 무리 없이 (고) 득점이 가능했습니다. 작문 교정은 옛날에는 사람이 했다던데, 저는 chat GPT가 굉장히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마 시험대비 가장 시간을 적게 분배한 파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하기.
가장 걱정했던 분야이면서 실질적으로 독일어 실력이 판가름 나는 분야라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Goethe의 말하기 시험은 는 발표하기와 대화하기 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냥 외워서 말하는 것도 힘든데, 대화까지 해야 해서 가장 심리적 부담감이 컸습니다. 인터넷 강의로만으로는 대화를 연습할 수 없으므로 이 분야는 과외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시험을 6주 정도 앞두고 과외를 구했습니다. 첫 수업을 앞두고 제 역량을 파악하기 위해 30분 정도 시범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제 목적은 두려움 없이 대화하기였는데 사실상 주제파악을 못했던 거였죠. '일단 발음이 안되네요'라는 진단과 함께 지금 상황에서는 대화를 연습하기보다 주어진 문제 풀(pool)에서 알맞은 문장을 정확한 문법과 발음으로 구사하는 게 우선이라고 '아직 대화를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를 돌려 말해주시더군요. 어차피 지금 상황으로는 대화문을 외워가도 발음이 안돼서 의미 전달조차 안되기 때문에, 한 달 동안 단어의 발음, 악센트를 비롯해서 문장 전반에 대한 교정에 집중하기로 하였고, 그래도 시험은 쳐야 하니 예상 주제에 대한 스크립트를 구성해 보는 형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한 달간의 과외를 마친 뒤, 선생님께서
1. 운이 좋아 공부해서 발음까지 외워간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주제가 나오고,
2. 파트너가 센스가 있어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대화를 이어갈 능력이 있으며,
3. 나 역시 센스가 있어 시험관이나 파트너의 질문 이해하고 대답할 수 있으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당연히 그렇지 못했습니다. 운이 좋아 아는 주제도 나와 외워간 대화문으로 파트너와 어떻게 대화를 이어갔지만, 시험관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던 게 패착이었습니다. 독일어를 제대로 구사하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가야 한다라는 점을 비싼 돈 주고 몸과 마음속 깊이 새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결국 1년여간 주변에서 어디 아프냐고 할 정도로 스트레스받아가며 Goethe 시험 준비를 하고, 모든 분야에서 불합격(의외로 듣기가 그나마 제일 높게 나와서 위로가 되긴 했습니다만), 5개월 뒤 진행한 2번째 시험에서도 불합격을 받고 나니 독일에 꼭 가야 할까 싶을 정도로 기가 죽었습니다. 하지만 놀지도 못하고 30살을 훌쩍 넘어 독일어에 올인했던 시간이 아까워서 적당히 타협하여 좀 더 쉬운 Telc로 시험을 변경하여 마지막으로 응시하기로 했습니다.
모의고사만 봐도 확실히 Telc 가 쉽고 간단합니다. 주제자체가 Goethe보다 흥미로우며 전문적이지 않습니다. 그동안의 짬으오로 B2를 신청하려고 했지만, 시험을 주관하는 학원에서 미리 본 레벨 테스트에서 B2를 볼 수 있는 실력이 아니라고 판명되어(그 당시는 이조차 못한다는 생각에 굉장히 자괴감이 들었지만), 마음 편하게 이민에 필요한 최소 언어능력인 B1에 응시했고, 독일어 공부 약 1년 10개월 만에 Telc B1 능력시험에 합격하여 룰루랄라 독일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언어는 어려운 것이다. 모태 언어취약자는 이것을 까먹지 말자.
2. 독일어 공부 1년 만에 능력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은 통과했기 때문에 블로그에 쓴 것이다. 절대 일반화 하지 말자.
3. 독일어 능력 시험은 시험일뿐. 진짜 독일어는 현지에서 배우자.
독일에 와보니, 정확한 독일어를 못해도 독일사람들은 큰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진짜 못 알아듣겠으면 녹말(noch mal)? 하면서 다시 말해달라고 합니다. 누가 봐도 저는 이방인이니까요. 더듬더듬 독일어를 하고 있으면 영어로 알려주기도 합니다만, '나는 독일어를 쓰려고 해'라는 뉘앙스만 비춰준다면 눈치코치로 잘 알아듣고 흔쾌히 대답해 줍니다. 물론 독일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독일 온 지 이제 막 한 달인데 찬찬히 해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입독 6개월간은 독일어 공부에 올인해 보기로 합니다. 그 결과 얼마나 늘었는지는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현재 다니고 있는 독일 어학원의 교재. 내용 구성면에서 굉장히 알찬데, 국내에서 구하려면 이전판 밖에 구할 수 없다. 다시금 제2외국어를 배우기 어렵다고 느꼈다)
*다음 주제는 '이민 박람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