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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탕 Jun 15. 2023

오늘 뭐 먹을 거야?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따라쟁이가 된다.



우리는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따라 한다.


특히 상대에게 호감이 있다면 사소하게는 말투로 시작해 표정이나 행동까지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한다고 한다. 이걸 미러링 효과라고 하는데, 내 경우엔 그 사람이 먹는 걸 따라 한다.


오전 11시 50분.

이 시간이면 카톡을 하던 사람이 누구든 나는 같은 질문을 한다.


[ 오늘 점심엔 뭐 먹을 거야? ]


나와 친한 이들은 이제 이런 질문에 ‘갑자기?’라는 반응 대신, 태연하게 메뉴를 대답해 준다.

오늘은 아주 짧은 소나기가 왔다. 마침 대화 중이던 친구에게 질문하니 금세 답장이 온다.


[ 감자채전. ]


[ 감자전이 아니라? ]


나는 감자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만드는 과정에 비해 까다롭기도 하고 굳이 전 말고도 맛있게 먹을 방법이 많으므로 채소전이나 김치전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감자 채전이라니?


[ 그건 그냥 감자볶음 뭉친 거 아니야? ]


[ 무슨 소리야. 감자채전이 얼마나 맛있는데. ]


이 친구는 알아주는 구황작물 애호가이다. 나의 물음에 발끈한 친구는 장장 십여 분간 감자채전에 대한 예찬을 시작했다. 나는 그가 이렇게나 좋아하는 감자채전이 궁금해졌다. 좋아하는 음식은 그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게 만드니까.


당장 유튜브를 틀어 감자채전 레시피를 검색했다.

감자전보다 훨씬 간단해 보이는 조리 과정은 마음에 들었다.


좋아. 오늘은 새로운 요리 도전이다.




우선 껍질을 깐 감자를 얇게 채를 썬다.

채칼이 있으면 편하겠지만... 채칼은 미니멀리즘을 시작한 뒤,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방출당한 주방 도구였다. 예전부터 나는 채칼을 쓰면 손이 쉽게 베이곤 했다. 칼은 맨날 써도 다치질 않는데 이상하게 채칼만 쓰면 다친다. 


그러니 오늘도 칼로 열심히 썰자.

열심히 썬 감자채는 찬물에 담가 전분 끼를 빼준다.


그동안 초간장을 만들면 좋다.

초간장은 나만의 레시피가 있지만, 오늘은 유튜브 그대로 따라 해 보기로 했다.

볼에 설탕 반 티스푼, 간장 세 스푼, 식초 한 스푼을 넣고 잘 섞어준다.

여기에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어주면 끝이다.


감자채의 물기를 뺀다. 물기를 완전히 제거할 필요는 없다.

간은 소금 두 꼬집, 후추 한 꼬집.

부침가루 세 스푼을 넣어 버무리면 반죽은 끝이다.


참 간단하고 별거 없는 과정이라 오히려 기대된다.


오늘은 스테인리스 재질의 팬을 꺼냈다.

기름에 부치고 튀기는 요리는 스텐팬 쓰면 훨씬 바삭하고 맛있다.


반죽을 젓가락으로 집어 팬에 얇게 펴준다.

앞뒤로 바싹하게 구워주면 끝이다.




시원한 얼음물을 준비했다. 재료가 간소한 음식은 온전히 느끼고 싶어 음료나 술보단 물을 곁들인다.

친구에게 보여줄 사진을 급하게 찍고 분주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바삭한 전은 식기 전에 먹어야 제맛이다.


바삭.


이거 맛있는데?


감자전과는 완전히 다른 맛이다.

쫀득함은 거의 없고, 마치 감자튀김을 한 주먹 쥐어 입에 와구 넣는 느낌이다.

간이 너무 잘 됐다. 이대로도 너무 맛있지만 애써 만든 초간장 맛도 봐야겠지.


초간장을 콕 찍어서 한 입.

얇게 썰어 놓은 청양고추가 알싸하게 퍼지면서 입맛을 돋운다.

이렇게 먹으니까 또 감자튀김이 아니고 감자전 같아서 재밌다.


오랜만에 새로운 맛을 발견했다.

이 맛을 알게 해준 친구에게 고맙다며 감자채전 사진을 보냈다.


[ 감자채전 너무 맛있다!!!! ]


5분도 되지 않아 답장이 온다.


[ 뭐야 뭐야 왜 너만 먹는데! ㅠㅠ 나도 갈래! ]


결국 이 친구는 구내식당 음식을 먹은 모양이다.

하긴, 점심부터 전을 먹을 수 있는 곳은 흔하지 않지.


친구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실컷 약을 올리며 웃었더니 보고 싶다.



다음에 집에 오면 만들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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