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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탕 Jun 19. 2023

아빠의 시그니처 조미료

닭볶음탕의 비결 


레시피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인종에 따라, 나라, 지역, 가정에 따라 그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입맛이라는 건 결국 취향의 영역이기 때문에, 요리를 하는 사람마다 모두 자신만의 요리법이 있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같은 음식인데도 전혀 다른 걸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엔 소고기뭇국이 빨갛다던가 순대를 초장에 찍어 먹는 등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무척 당황했다. 소고기뭇국은 하얗고 맑은 국물이 아니었나! 순대는 당연히 소금이지! 튀김을 왜 상추에 싸 먹어?

하지만, 호기심 가득한 나는 이 음식들을 전부 먹어봤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역시 먹잘알의 민족이다. 빨간 소고기뭇국은 얼큰하니 좋고, 순대를 초장에 찍어 먹으면 별미 중의 별미다. 게다가 튀김을 상추에 싸 먹으면 죄책감까지 덜어진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른 요리는 아니지만, 우리 집에도 그런 요리가 있다.

바로 아빠가 만드는 닭볶음탕이다.



아빠가 본격적으로 부엌에 들어가신 건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한 뒤였다.

아빠는 요리를 좋아하신다. 그래서 집에서 쉬시는 동안 우리 가족은 모두 아빠의 요리를 먹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주부 내공이 쌓인 엄마에 비하면 맛이 들쭉날쭉했다. 게다가 우리 아빠의 요리는 … 중간이 없다!

맛있는 건 너무너무 맛있었고 맛없는 건 “아니 어떻게 이 재료로 이 맛이….”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중 최고가 있다면 닭볶음탕이었는데, 나는 아빠의 닭볶음탕을 먹기 전까진 닭볶음탕의 이름이 왜 닭볶음탕인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먹어본 닭볶음탕은 엄마가 만들거나 급식에서 나오는 게 전부였다. 그 둘은 모두 국물 대신 양념이 있는 조려진 형태였다. 탕이란 국물이 있어야 탕 아닌가? 이건 조림 같은데. 이게 닭볶음탕에 대한 내 생각이었다.



아무튼, 그날은 평범한 저녁 시간이었다.


“오늘 저녁은 대박일 거야! 먹고 울지나 마!”


아빠는 식구들에게 호탕하게 외치셨고, 엄마는 “네 아빠가 또 어디서 뭘 봤나 보다.”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빠는 곰솥을 꺼내 요리를 시작했다. 솥을 꺼낼 때부터 알았어야 했다. 오늘 저녁은 상당히 늦어질 거라는 것을…. 


기다리는 내내 집 안에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얼큰하고 진한 향기가 가뜩이나 배고픈 위장을 톡톡 건드렸다.

꼬르륵. 기다리다 쓰러지겠다 생각한 순간, 구원자 같은 아빠의 목소리가 울렸다.

“와서 밥 먹어라!”

(이 소리에 동생이 그야말로 총알같이 튀어나와서 우리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평소라면 세 번을 불러야 나오는 녀석이다.) 

그런데 식탁 위에 차려진 닭볶음탕은 내가 알던 그 비주얼이 아니었다.

빨갛고 걸쭉한 양념이 아니다. 대신 국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흥건한 탕이 있었다.

그야말로 닭볶음’탕’이었다.

“에이, 이거 덜 조렸네.”

“잔말 말고 국물부터 먹어봐. 예술이니까.”

아빠의 자신만만함에 반신반의하며 국물부터 한술 떴다. 후후 불어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갈 먹으면 … "너무 맛있었다!" 극찬이 절로 튀어나오는 맛이었다. 진한 닭 육수와 얼큰한 국물이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고, 감칠맛에 식욕이 날뛰기 시작했다. 나만 맛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식탁에 앉은 다른 가족들도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아주 맛있게 닭볶음탕을 먹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우리 집 식탁 위엔 아빠의 닭볶음탕이 자주 올라온다. 엄마도 닭볶음탕만큼은 전적으로 아빠에게 맡긴다. 


그야말로 아빠의 시그니처 요리가 된 셈이다. 



오늘은 마트에서 닭고기를 보고 추억에 잠겼다.

그대로 바구니에 넣고 곁들일 채소를 집어 집으로 돌아왔다.

나 역시 나만의 닭볶음탕 레시피가 있지만… 오늘은 아빠표 닭볶음탕이다.

우선 닭은 깨끗하게 씻는다. 염지를 하면 훨씬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그건 시간이 너무 걸린다.

끓는 물에 닭을 가볍게 데쳐 불순물을 제거하고 버린 뒤, 다시 물을 끓인다. 물이 끓는 동안 감자와 당근, 양파와 대파를 먹고 싶은 크기로 잘라주면 준비는 끝이다. 

이 닭볶음탕은 양념이 제일 중요하다. 된장 한 스푼과 고추장 한 스푼을 잘 풀어준다. 여기에 고운 고춧가루 두 스푼, 다시다 한 스푼, 설탕 반 스푼과 미원 약간, 다진 마늘 두 스푼을 넉넉히 섞어 양념을 준비한다. 

이제 잘 손질한 닭과 감자와 당근, 양념을 넣고 보글보글 끓여주다, 양파와 대파를 넣고 끓여주기만 하면 끝이다.

그런데 중간에 간을 보니 뭔가 아쉽다. 매콤함이 부족한가?

마무리로 청양고추 두 개까지 송송 썰어 넣고 대접에 푸짐하게 담았다.

비주얼은 그럴싸하다.기대감을 가득 품고 국물부터 한 입 먹는다. 


맛있다. 


그런데 아빠표 닭볶음탕의 맛은 아니다.

얼큰한 국물과 진한 닭 육수의 맛. 감칠맛까지 다 있는데도 전혀 다른 맛이다.

이것도 맛있지만, 다른 종류의 맛있음이다.

역시 그 맛은 아빠 손에서만 나오는 맛일까?

아니면 배고픔이 만들어 낸 환상일까.

어쩌면 조금 유치한 말이지만… 흔히 말하는 사랑이라는 조미료가 빠져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닭볶음탕에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가족들을 생각하는 마음, 맛있는 음식으로 든든히 챙겨주고 싶은 따듯한 마음이 고스란히 닭볶음탕 국물에 녹아들어 있던 것이다. 


사랑의 조미료라는 건 정말 있구나.


오늘은 아빠한테 전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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