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로 몸과 마음을 소독하는 시간

긴 겨울 따뜻한 보약

by 이수 E Soo

매일이 어둠으로 가득했던 한 주를 보냈다.

그러다 마주한 파란 햇살은 무채색이던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왠지 모를 행복한 일들로 가득 채워질 것만 같은 예감.

입가에서 떠들썩한 웃음이 가시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

이 햇살이 주는 행복감이다. 눈부신 빛에 두 눈이 절로 감겼다. 나는 그 햇살을 얼굴에, 가슴에, 그리고 온몸 구석구석에 가득 담아보았다.

파란 하늘을 바라만 봐도 마음이 밁아진다.

캐나다의 겨울은 길고 지루하다. 세상은 회색빛으로 가득하다. 5월 중순은 되어야 비로소 그 긴 여정이 끝이 난다.

처음 캐나다 이민을 결정했을 때도, 발목을 잡았던 건 역시 길고 긴 겨울이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엄마는 나를 한의원에 데려가 한약을 지어주셨다.

멀리 떠나는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엄마만의 마지막 안심이었을 것이다.

내 손목에 손을 얹고 진맥을 하던 한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수진이는 추운 나라랑은 잘 안 맞는데. 체질이 차가워서 LA나 캘리포니아처럼 따뜻한 곳으로 가는 게 딱 좋을 텐데!"

그 말이 맞다. 그곳엔 겨울이 없으니까. 매일이 찬란하고 반짝이는 날들일 테니까.

반면 내가 택한 캐나다는 지루할 만큼 혹독한 겨울이 이어지고, 일주일 내내 흐린 하늘과 눈비 섞인 날들을 마주해야 하는 곳이다. 두꺼운 옷으로 몸을 꽁꽁 싸매다 보면, 가뜩이나 어두운 날씨에 몸도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지곤 했다.

그래서일까. 일주일 만에 조우한 햇살이 더없이 소중했다.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던 몸과 마음을 햇살이 깨끗하게 소독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차가운 바람이 코끝과 귀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가만히 손으로 어루만져 본다. 코끝은 시려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나는 나무의 그림자처럼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오늘 이 눈부신 햇살을 잊지 않으려는 듯이.

햇살을 만든 그림자 나무도 행복하다.

우리는 날씨의 영향을 받으며 산다. 햇빛은 기분을 돋우고 의욕을 빚어낸다. 햇살이 가득한 날, 문득 "행복한 일들로 가득 찰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건 뇌 속에서 세로토닌이 팡팡 터져 나오는 덕분일 것이다. 반대로 흐린 날씨가 길게 이어질 때면, 낮 시간조차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마음이 자꾸만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한국과 닮은, 아니 한국보다 훨씬 더 매운맛의 사계절을 가진 캐나다에 살고 있다.


이곳의 사계절은 단순히 기온의 오르내림이 아니다. 그것은 지독한 기다림의 미학이다. 겨울이 5월까지 끈질기게 발목을 붙잡는 이곳에서, 계절은 치열한 투쟁 끝에 쟁취하는 전유물에 가깝다. 꽁꽁 얼어붙은 땅 아래서 숨죽이며 봄을 기다리고, 짧지만 강렬한 여름의 초록에 열광하며, 타오르는 단풍으로 가을을 마중한다. 그러다 다시 긴 어둠의 터널로 걸어 들어가는 일. 토론토의 사계절은 그렇게 매 순간 살아 움직이는 역동이다.

날씨에 민감한 내 몸은 그 변화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춘다. 흐린 날엔 마음의 온도가 한없이 내려가다가도, 오늘처럼 햇살이 비치는 날엔 온몸의 감각이 일제히 깨어난다.

문득 생각한다. 만약 내가 LA에 살았다면, 오늘 이 햇살이 주는 압도적인 황홀경을 알 수 있었을까? 매일이 빛나는 곳에서는 빛의 귀함을 잊기 마련이다. 그림자가 흐릿한 땅에서는 내 존재를 선명하게 비춰줄 햇살의 소중함을 절감하기 어렵다.


한의사 선생님의 말처럼 내 체질은 따뜻한 나라에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혹독한 겨울이 있기에 봄의 연두색이 눈물겹게 고맙고, 일주일의 어둠이 있기에 단 몇 분의 햇살에도 온 세상을 얻은 듯 웃을 수 있다.

계절이 바뀌듯 내 마음의 근육도 조금씩 자라난다. 추운 나라에서 나는 단순히 버티는 것이 아니라, 계절마다 다른 색깔의 행복을 발견하는 법을 배워간다. 지금 내 얼굴을 간지럽히는 이 눈부신 햇살은, 그 무엇보다 달콤하고 특별한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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