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love yourself

by 이수 E Soo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없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 저마다 말하기 바쁘다. 낯선 이들이 한 발짝 가까워졌다는 증거겠지만, 가끔은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의 입이 훨씬 더 많아 보인다.

나는 늘 리스너였다. 말하는 쪽보다는 언제나 듣는 쪽. 내가 힘들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어 만든 자리조차, 결국 상대의 푸념과 일상을 들어주느라 정작 내 속말은 입안에서 맴돌다 삼켜지곤 했다.

언제나 먼저 연락을 건네는 것도 나였다. 생일을 챙기고, 선물을 고르고, 안부를 묻는 일들. 그런 다정함이 쌓일수록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은 텁텁해지기 시작했다.


캐나다의 긴 겨울, 짙은 수묵화 같은 마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연락하는 사이가 되어 가는 것 같았다.

마음은 주고받는 것 아닌가.

일 년에 특별한 날들, 내가 보내는 것들을 상대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질 때쯤, 주기만 하는 일에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물론, 내가 좋아서 해오던 일들에 후회한 적은 없다. 습관처럼 해오던 일들을 올해부터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먼저 연락하기보다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연락이 뜸해져 끊어지는 인연 앞에서도 더 이상 아쉬워하거나 매달리지 않기로 했고, 타인의 생각을 덜어내기로 했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럼 그때, 나는 너에게 어떤 말을 했어야 했을까,
이런 질문들로 내 마음을 오래 붙잡아 두지 않기로 했다.

타인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안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있다는 걸.
붙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마음이 있다는 걸.

그래서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내 생각과 마음을 빼앗겨 혼란에 빠지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내 하루의 온도가 바뀌지 않게 하기로 했다.

사람을 오래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말은 왜 나왔을까, 그때의 표정은 무슨 뜻이었을까,

나는 늘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쪽에 서 있었고, 그만큼 내 마음은 자주 뒤로 밀려났다.

그러다 문득 알게 되었다.
타인을 오래 생각한다는 건 때로는 그 사람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방법을 아직 몰라서라는 걸.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에서 이렇게 썼다.

“To be yourself in a world that is constantly trying to make you something else is the greatest accomplishment.” — Ralph Waldo Emerson

“끊임없이 다른 모습이 되라고 요구하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위대한 성취다.”


내 마음이 아닌 방향으로 계속 나를 꺾어 가면서, 좋은 사람이고 싶어 했던 날들이 있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나를 조금씩 잃어 갔던 시간들.

이제는 안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는 내가 덜 소중해져도 유지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나를 가장 먼저 지키는 일이 결코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것도.

그래서 나는 타인의 생각을 덜어내기로 했다.
그때의 말, 그날의 표정, 그 이후의 침묵에 내 하루와 내 계절을 빼앗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싶은지, 그것을 더 자주 묻기로 했다.

나의 속도, 나의 온도, 나의 마음을.


새해 아침,

짙푸른 어둠이 거칠 때 빼꼼히 빛을 내며 호숫가 물결을 따라 흐르는 출렁이는 노란빛처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빛을 내며 흐르는 올해의 내가 되기로 했다. 사람을 덜 사랑하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나를 더 오래 사랑하겠다는 약속이다.

어둠이 사라질때 빛이 가득하다. 2026. 새해. Humber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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