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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다시 디자인을 공부한 이유는_1

새로운 삶을 위한 도전

by Soo 수진

토요일 아침.

토요일인데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평일엔 주말이 언제 오나 요일을 세며 기다리는데, 막상 토요일 되면 이른 아침부터 눈이 번쩍 떠진다. 마치 월요일 아침처럼, 마음이 분주해지는 듯하다.

나의 방은 빛하나 새어 나오지 못하게 빛이 차단되는 암막커튼으로 바꾼 지 꽤 됐다. 예전에는 아침 햇살이 그대로 스며드는 얇은 커튼이었고, 커튼 사이로 붉은빛이 방안에 가득했었다. 아마도, 캐나다 대학에서 디자인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불면증이라는 게 생긴 거 같다.


역시, 공부는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대학에 가려던 생각이 없었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캐나다에 왔고, 캐나다의 자연에 매료되어 엄마 아빠가 계신 한국에 다시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처음 캐나다에 도착했을 때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공항 밖으로 나서자 눈부신 햇살이 쏟아졌고, 나는 겨우 눈을 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국과는 다른 맑고 청량한 공기,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 온몸을 감쌌다.

그날은 9월, 캐나다의 낙엽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하늘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 내가 좋아하는 구름들이 잔뜩 떠 있었다. 마치 손끝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솜사탕 같은 구름들. 나는 몇 번이고 손을 뻗어보았다.

그날, 캐나다의 하늘도, 바람도, 공기마저도 나를 반겨주는 듯했다. 모든 것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매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캐나다의 아름다움 속에 머물며, 그 순간 자체로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그해, 캐나다에 도착해 떠났던 첫 여행에서 느낀 감정은 여전히 내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 가을에 도착한 나는 어디를 가든 붉은빛으로 물든 풍경 속에서 자연이 주는 황홀함과 경이로움, 그리고 깊은 감동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 순간의 감정은 파도처럼 가슴속으로 밀려들었고, 나는 그 풍경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그때의 강렬한 감정 때문인지, 캐나다에서의 삶은 내게 언제나 행복으로 다가왔다. 나는 여전히 그 기억을 품은 채, 그때의 마음을 안고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살면서 지치고 힘든 날이 많았다.

오늘 기사에서 본 것처럼, 한국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고, 마치 자유를 빼앗긴 새처럼 갇혀 있다는 기분이 들 때도 많았다.

조직 내 서열과 상하 관계, 광고주와의 ‘갑과 을’ 관계, 금요일 오후의 회의 후 주말까지 이어지는 업무, 팀원들과 함께 성과를 내야 하는 책임감,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압박.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삶을 지배했고, 마치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듯했다. 그때 나는 지쳐 있었고, 내 삶 속에는 여유라는 것은 없었던 거 같다. 결승점도 없이 앞만 보며 전속력으로 달려가기만 했었다.

그러다 캐나다에 왔다. 모든 걸 내려놓고, 뒤돌아 보지도 않고.



한국 예능프로그램 KBS 2TV '사장님 귀는 당나귀'라는 예능프로를 보고 캐나다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1.5세인 그녀가 내게 물었다.

"언니, 거기에 나오는 직장문화, 다 프로그램 재미를 위해서 대본으로 짜인 거죠? 쉬는 날 오너가 오라고 하면 본인 일정이 있는데도 가야 하고, 주말에 일하는 것도 그렇고... 회식이나 늦게까지 야근하는 일… 그거 다 아니죠? 다 대본이죠?"

나는 이 말을 듣고 놀랐다.

"아… 캐나다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에게 한국 직장 문화는 마치 현실감 없는 드라마처럼 보이는구나."

너무도 당연하게 겪어온 일들이 누군가에겐 믿기지 않는 이야기라니, 새삼 놀라웠다.


"아뇨! 심하면 심했지.. 화면 그대로 현실적인 직장문화예요. 우리 회사 오너는 등산을 좋아해서 토요일에 전 직원 등산을 해야 했고, 회식하다 먼저 가다 걸리면 다음날 아침 이사에게 불려 갔었고, 주말에 1박 2일로 워크숍을 가야 했고, 그 워크숍을 위해 팀원들은 프로그램을 짜야했으며, 아! 누구를 위한 워크샵였는지..

야근 없는 팀은 다음날 야근을 만들어줬고, 팀원들은 택시를 타고 가려고 지하철 끊기는 늦은 밤 시간에 퇴근을 했어요.“

TV 속 장면이 믿기지 않듯이, 그녀는 내 이야기 역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촉촉해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어떻게 살아요? 너무 힘들지 않아요?

말로만 들었는데 정말이구나!"

캐나다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한국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프로젝트 일정이 늘 빠듯했었고, 야근과 추가 업무가 빈번했다. 디자인을 수정하는 과정에서도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자주 바뀌었고, 세부적인 요구사항도 많았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프로젝트 진행 속도가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중요하게 여긴다.

정해진 근무 시간이 끝나면 퇴근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으며, 클라이언트와의 소통도 보다 체계적이다.

이런 차이점을 경험하면서, 두 문화에서 각각 배울 점이 있다고 느꼈다. 한국에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하는 능력과 멀티태스킹 스킬을 키울 수 있었고, 캐나다에서는 전문성을 살려 깊이 있는 디자인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경험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의 디자이너로서의 삶은 협력과 빠른 템포 속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며 성장하는 과정 있었기에, 그런 경험이 캐나다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현재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밑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이제는 감사한 마음으로,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돌아볼 여유와 잠시 숨을 고를 날들이 생겼다.

캐나다에서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나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주고, 자연을 바라보며 감동하게 하며, 매일을 감사하게 만들었다.

캐나다에서 살면서 제일 많이 본건 나무들이다 :)


처음 캐나다에 도착했을 때, ‘다시는 디자이너가 되지 말아야지. 만약 공부를 하게 된다면 전혀 다른 일을 찾아야지’라고 다짐했었다. 그만큼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동안 여유로운 삶을 누리며 영어 공부와 취미생활을 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후배들을 만났다. 내 팀원이었던 그들은 다니던 회사를 나와 새로운 디자인 회사를 설립했고, 우리가 함께했던 일들을 더 발전시켜 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안 깊숙이 밀어 넣어 두었던 ‘열정’이라는 감정이 다시금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과장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캐나다에 가시더니 좋아 보이시네요! 그런데, 일하고 싶지 않으세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계실 분이 아니잖아요.

그 실력 다 버리신 거예요?"

"과장님은 도시가 더 잘 어울리는 분인데, 캐나다... 괜찮으세요? 자연도 좋지만, ‘도시녀’와는 정반대의 삶이잖아요!" 내 팀원이었던 대리가 그렇게 물었다.

그녀의 말대로, 캐나다는 한국과 다르게 따분하고 심심한 부분이 있다. 한국에서 일하던 회사는 청담동과 갤러리아 백화점이 있는 압구정역 주변에 있었고, 내가 살던 가로수길은 트렌디한 팝업스토어나 감각적인 브랜드들이 끊임없이 생겨나 활기차고 북적였다. 그곳은 언제나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찬 곳이었다.

매일 변화하고 자극적인 도시 속에서 살았던 나.

반면, 캐나다는 조용하고 차분하다. 변화의 속도는 느리고, 화려한 트렌드보다는 오래도록 유지되는 것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녀의 말대로, 캐나다는 한국과 참 다르다.


나는 그녀와 대화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업계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 순간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캐나다로 돌아온 후, 나는 다시 디자이너의 삶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단순히 재취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캐나다 회사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고,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했다.

지금,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캐나다에서도 더 이상 그래픽 디자이너‘타이틀로만 재취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넘쳐나는 시각적인 새로운 프로그램을 알아야 하고, 회사에서도 그래픽 디자인은 기본이고, 비디오에디터, 애니메이션,

XD, UI / UX.. 어도비 프로그램을 다룰 주 아는 디자이너를 원한다. 거기에 맞춰 새로운 발전이 있어야 했다.


한국에서 여름을 보내고 온 터라, 가을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몇 군데 대학을 알아보았고, 공부해 보고 싶었던 과정을 선택해 빠르게 지원을 준비했다. 디자인과에 지원하려면 디자인 테스트포트폴리오가 필요했다. 각 대학에서는 실기 과제가 포함된 편지를 보내왔고, 정해진 시간 내에 제출해야 했다.

다행히 나는 한국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었고, 특히 외국계 기업을 위한 작업이 많아 로고만 봐도 글로벌한 프로젝트임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모든 포트폴리오가 한국어로 되어 있었기에, 영어로 번역해 새롭게 정리한 뒤 제출했다.


- 다음 주 연재를 기다려주세요 :)

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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