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선

한국과 캐나다, 디자인 감각은 어떻게 다를까?

by Soo 수진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일할 때, 디자인 서적과 외국 잡지를 꾸준히 구독했었다. 대기업의 사보 역시 정기적으로 신청했고, 구하기 어려운 사보는 홍보실에 직접 전화를 걸어 받아보기도 했다. 달마다, 계절마다 변하는 표지와 레이아웃을 살펴보는 것이 즐거움이었으니까. 사실 글의 내용보다 시각적인 요소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래서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마치 사진처럼 내 머릿속에 새겨졌다.

회사에서도 늘 새로운 디자인 서적이 도착하면 제일 먼저 펼쳐보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내 책상 위에는 언제나 책이 쌓여 있었고, 그 책들은 나에게 끝없는 영감을 주었다.

대학 시절, 많은 과목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건 타이포그래피 수업이었다. 타이포그래피는 편집 디자인의 중심이자, 감성을 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사진 위에 감각적인 글씨체가 더해져야 비로소 완벽한 책 한 권이 완성된다.

캐나다에는 동네 가까운 곳곳에 도서관이 있다. 그곳에 갈 때마다 디자인 레이아웃이 세련된 책들을 한 아름 가져와 살펴보곤 한다. 색감이 조화로운 요리책, 감각적인 여행책, 패션 화보, 그리고 깊이 있는 사진 도서들까지. 책을 펼치는 순간, 나는 또다시 영감의 바다에 빠져든다.

도서관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 모든 것이 예쁘게 보인다.


디자이너는 어디에서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을까?


디자이너는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얻는다. 물론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렇다.

자연과 사물, 그리고 새로운 환경 속 경험들이 나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자연의 색감이 주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고, 여행을 떠나면 도시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분위기와 느낌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길을 걸으며 마주한 색, 빛, 공기의 결까지 노트에 적어두기도 한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본 '멜로 무비'라는 드라마 속 한 장면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배우들이 내뱉는 대사 하나하나가 감정선을 따라 흐르고, 그 감정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다. 잔잔한 음악, 부드럽게 깃드는 햇살, 바람에 산들거리는 나무들, 그리고 초록이 가득한 화면. 그 순간, 마음이 몽글해졌다.

나는 어느새 그 장면 속에 들어가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문득 깨달았다. 영감이란 공감과 맞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마음에 와닿았던 대사들을 기록해 두었다.


“글이라는 게 쓰는 사람 얼굴과 표정과 말투가 담기지 않아서 가끔 제 생각보다 더 날카롭게 읽히기도 하더라고요.

물론 아직 제 글이 부족해서 그런 거겠죠? 감독님 영화에 대한 비평도 이렇게 직접 마주하고 이런 얼굴로 전달했더라면 아마 그렇게 기분 나쁜 글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러니 이번 한 번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


"나도 시간이 필요하잖아. 헤어진 것도 다시 나타난 것도 뭐든 네가 결정이 빨랐잖아. 그러면 적어도 나한테 따라갈 시간이라도 줘야지. 아무것도 이해 안 돼도 어떻게든 이 말도 안 되는 모든 상황을 이해하려고 지금 노력 중이니까.

너 나 잘 아는 거 아니야. 나도 너 잘 몰랐고, 그러니까 우리가 헤어진 거야.




어느 날, 같이 일하는 동료 디자이너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는지, 어떤 디자인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그녀는 'pinteres' 'Behabce' 또는 올해의 캐나다나 미국에서 선정된 잡지를 찾아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동료가 보내준 이메일이다.

Hi Soo,

Here are some Canadian magazines that are winning awards. Maybe it would be interesting for you to check the design:

https://nmafpublic.s3.amazonaws.com/files/2021/812/1704989619006-SERV03-Whole-Issue.pdf
https://nmafpublic.s3.amazonaws.com/files/2021/921/1705001563695-NP24-Complet.pdf

https://nmafpublic.s3.amazonaws.com/files/2021/1314/1705082448945-Range-Volume-4.pdf


나는 그래픽 디자이너고, 지금 매거진 디자인 일을 한다.

분기별로 잡지를 제작하면서, 최종 결과물이 나올 때마다 한국과 캐나다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한국과 캐나다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차이는 업무의 분업화와 업계 구조였다.

한국에서는 디자이너가 프로젝트의 거의 모든 과정을 직접 챙겨야 했다.

기획부터 디자인, 색상까지 전반적인 과정을 책임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원하는 색상이 정확히 구현되어야 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인쇄 감리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인쇄소를 찾아야 했다. 인쇄소에서 전화가 오면 새벽에도 주저 없이 성수동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디자이너가 여러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인쇄소를 직접 방문해 컬러를 확인하고, 작은 오류까지 세심하게 체크해야 했다. 만약 결과물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으면, 오타나 컬러 오류까지도 디자이너의 책임이 됐다. 인쇄 감리를 위해 현장에서 원하는 컬러가 나올 때까지 기계를 돌려가며 확인했던 기억도 있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훨씬 더 명확하게 구분된다.
인쇄소가 멀리 있는 경우가 많아 직접 감리를 보러 가는 인 거의 없다. 대신, 인쇄소에서 보내주는 샘플을 보고 최종 확인을 하거나 수정 오더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디자이너는 디자인 파일을 넘기면 업무가 끝나고, 이후 과정은 프린트 담당자가 맡는다. 만약 인쇄 사고가 발생해도, 그 책임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프린트 담당자에게 있다. 이 외에도 일 처리 방식이 서로 다른 점이 많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한국에서는 디자이너가 정말 많은 역할을 수행하며 멀티태스킹이 필수적인 환경에서 일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디자이너의 업무 범위와 책임이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캐나다에서 일하면서 새삼 실감되었다. 자연스럽게 디자이너로서의 역할과 책임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어느 쪽이 더 좋은 환경일까?


그건 아마도, 디자이너마다 다른 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좋은 디자인과 그렇지 않은 디자인은 무엇이 다를까?

특히 내 경우에는, 타이포그래피의 차이에서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낀다. 서체의 선택, 자간과 행간의 미세한 조정, 레이아웃의 균형감… 이 작은 요소들이 모여 디자인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디자이너마다 타이포그래피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어떤 환경에서든, 디자이너는 결국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선택해야 한다.



봄빛처럼 햇살이 가득한 토요일 오후, 나는 서점에 갔다.
큰 창문 앞에서 눈길을 끄는 책들을 한가득 쌓아두었다. 타이포와 종이의 질감이 좋은 책들을 손끝으로 느끼는 순간, 마음이 들떴다. 화사한 색감이 돋보이는 책들이 자연스레 손길을 이끌었다.

앞에 놓인 달콤한 ‘셰이크쉑 밀크셰이크‘를 한 모금 마셨다. 부드러운 단맛이 온몸에 퍼지며 작은 행복이 번졌다.

달달한 셰이크와 예쁜 책들, 이 조합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그냥, 그 자체로 좋았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넘치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이렇게 시간을 내어 직접 책을 고르고, 종이의 질감과 색감을 눈으로 느끼는 것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과 손끝에서 전해지는 감촉은 화면 속 정보가 줄 수 없는 특별한 감성이니까.


햇살 가득한 날 만난 색감 좋은 책들.


나는 타이포그래피를 좋아하고, 감각적인 사진을 고르는 일에도 즐거움을 느낀다. 내 디자인에 어울리는 서체와 컬러, 그리고 적절한 사진을 선택하는 과정이 결국 내가 만드는 잡지를 더 완성도 높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이 일을 하는 매일이 즐겁고, 디자인을 완성해 가는 순간순간이 행복하다.

여기 내가 디자인한 매거진 중 몇 페이지를 소개한다. 각 페이지마다 담긴 타이포그래피, 색감, 그리고 이미지의 조화를 살펴보면 좋겠다.

Soo+


매번 다르게 작업하는 레이아웃의 즐거움 :)
이태리 지역에 있는 아름다운 곳을 소개하는 디자인
최근에 내가 작업한 매거진의 레이아웃_ 페이지 안에서도 균형과 조화, 미세한 부분들이 많다. 편집 디자인만의 즐거움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