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전하는 이야기, 그리고 행복이 스며드는 그곳
Prince Edward County, Ontario, Canada
2시간 정도만 벗어나면, 또 다른 분위기의 도시에 도착할 수 있다. 가까운 곳이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이곳을 잘 알지 못한다. 나 역시 우연히 JTBC <뭉쳐야 뜬다> 캐나다 여행 편을 통해 이 작은 도시를 알게 되었다. 그 후, 내가 사는 도시를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늘 이곳을 찾았다. 마치 숨어 있는 보석 같은 도시, 조용하고 친밀하면서도 싱그럽고 산뜻한 곳. 나는 이곳을 사랑한다. 수없이 다녀온 곳인데도 갈 때마다 설레고 기대가 된다. 푸른 나무들 사이를 가로질러 가는 길조차도 여행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여름의 초록빛은 유난히 싱그럽다. 온통 초록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내가 사는 도시와는 사뭇 다르다. 답답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신선한 생각을 가득 담아 돌아오게 된다. 이곳을 다녀오면 늘 생기가 돈다. 짧은 시간 안에 들러볼 만한 장소들도 많다.
내가 이 도시를 사랑하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이 안에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초록으로 가득한 나무들, 윤슬이 반짝이는 잔잔한 호수, 솜사탕 같은 하얀 구름과 그 사이로 비치는 눈부신 햇살. 푸른 하늘과 어우러지는 초록 등대,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부드러운 물살이 빚어낸 뽀얀 조약돌. 와이너리에서 즐기는 로제 와인, 향긋한 꽃들이 가득한 소박한 꽃집,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지는 여유로움, 그리고 따뜻한 사람들.
이 모든 것이 모여,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넓은 유리창 너머로 호숫가가 한눈에 펼쳐지는 레스토랑. 노란빛 테이블과 높은 천장이 주는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피시 앤 칩스, 색이 예쁜 샐러드, 그리고 시원한 샴페인 한 잔을 즐긴다.
생일 때마다 겨울에만 나오는 꽃을 조화롭게 엮어 파는 작은 꽃농장에서 꽃을 한 다발 사고, 이곳 레스토랑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곤 했다. 그런데 이번 2월에는 폭설 때문에 이곳에 오지 못했다.
이 도시는 조용하고 하늘이 투명해서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질 듯 가득했다.
"와! 저 별 좀 봐!" 감탄하며 양팔을 활짝 벌렸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둠 속에서 둥근달이 나를 따라오듯 길을 밝혀주었다. 마치 내가 가는 어두운 길을 비춰주는 듯했다.
이렇게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곳.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 인스타그램에도 이곳의 숨은 명소들을 찾아 찍은 사진들로 가득하다. 사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도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내가 추천한 곳을 다녀온 지인들은 하나같이 감탄하며, 여름 내내 주말마다 이곳을 찾은 사랑스러운 그녀도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알려줘서 고마워요. 우리 가족이 이곳을 정말 사랑하게 됐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아요. 그저 호숫가에 두 개의 의자를 놓고 앉아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눈부신 햇살 아래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되는 곳이에요."
그녀의 말처럼, 이곳은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그런 도시이다.
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그곳을 다녀왔다.
가는 길, 스타벅스에서 플랫화이트를 주문해 마시며 두 시간의 여정을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 차 와이퍼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빗물을 지웠다. 쏟아지는 비마저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운치가 있었다. 시선은 내내 창밖의 빗방울을 좇았다.
차 안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요즘은 성시경의 노래를 자주 듣는다. 몇 곡이 지나갔고, ‘그 자리에, 그 시간에’라는 곡에서 마음이 멈췄다. 노래 가사가 마치 나를 어느 시점으로 데려다주는 듯했다. 누구나 그런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한 노래의 가사를 들으면, 잊고 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고, 그때의 장면이 머릿속에서 선명해지는 순간.
나 역시 그런 순간이 있었다. 한 사람을 바라보며 시간이 멈추길 바랐던 시간. 그 자리에, 그 시간에 유난히도 빛이 나던 너와 나.
시간이 희미해질 즈음, 미리 예약해 둔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안내를 받아 들어서자, 창 너머로 수평선 끝까지 이어진 호수의 물결이 거칠게 출렁이고 있었다. 익숙한 곳이지만, 올 때마다 그 풍경에 다시 반한다. 단 한 번도 같은 느낌이었던 적이 없었다. 오늘은 비가 와서 또 다른 감정이 스며들었다.
비는 어느새 그쳤고, 바람을 알리는 바람개비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돌고 있었다.
레스토랑에 도착하기 전부터 피시 앤 칩스를 먹을 생각이었지만, 메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랍스터 롤을 주문했다. 30분 정도 대화를 나누며 기다리던 중, 음식이 나왔다. 그런데 내가 상상했던 롤과는 너무도 다른 비주얼이었다. "이게 롤이라고?"
내가 떠올린 롤은 김밥이나 캘리포니아 롤 같은 형태였는데, 실제로 나온 것은 작은 번 위에 랍스터가 올라간 심플한 요리였다. 양도 다른 음식에 비해 적어 보였다. 하지만, 이곳은 음식과 서비스, 분위기로 좋은 평을 받는 레스토랑답게 맛은 훌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아쉬움이 남았다.
레스토랑 앞,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너머로 호수의 물결이 바람에 따라 출렁이고, 내 머리카락도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바람이 불었다.
옷깃이 바람에 펄럭이고,
물결도 바람을 따라 춤을 춘다.
그동안 폭설로 인해 오지 못했던 이곳, 오랜만에 다시 도착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곳.
마음이 시원해졌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이렇게 좋아하는 장소를 좋은 사람과함께 찾는 순간이 그저 행복했다.
가끔은, 이런 시간이 나에게 꼭 필요하다.
집에 돌아와 찍은 사진들을 보며 그날을 떠올리고 있는데, 레스토랑에서 최근 방문 경험에 대한 리뷰 요청 이메일이 도착했다. 나는 솔직한 마음으로 리뷰를 작성해 보냈다.
- Thank you for asking about my experience. I usually go there for special occasions, and I have fond memories of celebrating my birthday there. However, I didn't quite understand why the dish was called a 'roll, ' and I don't think I'll order it again. In my opinion, the menu could use some revisions. Thank you, Soo.
이메일을 보내고 난 몇 분 후 매니저에게 답장이 왔다.
Hi Soo J,
Thank you for sharing your feedback with us! We’re sorry to hear that the lobster roll didn’t meet your expectations. We strive to provide delicious and well-priced dishes, and your comments are invaluable in helping us improve. We’ll definitely take your thoughts into consideration when revising our menu.
On the East coast they call the type of bun the lobster is served on a "roll" for some strange reason, which I understand could be confusing and I will speak to the staff about properly explaining the dish so that guests are not disappointed.
I hope this experience hasn't dissuaded you from joining us again in the future.
이곳이 왜 좋은 리뷰를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고객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내가 궁금했던 점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또한 내 의견을 스태프에게 전달해 고객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과 함께, 다시 방문해 주길 바란다는 따뜻한 답장을 보내왔다.
그렇게 메뉴에 적혀 있던 ‘랍스터 롤’이 왜 ‘롤’ 인지도 알게 되었다.
따뜻한 예의와 배려가 느껴지는 이곳. 하늘이 맑고 햇살이 눈부신 어느 날, 문득 다시 찾게 되겠지.
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