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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이름이 Soo가 된 이유

이름이 뭐예요? 내 이름은 'Soo, 수진'이에요

by Soo 수진

누구나 영어 이름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 이름은, 낯선 땅에서 다시 시작하는 또 다른 나의 이름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캐나다로 오기 전, 영어 이름을 찾기 위해 여러 번 검색하고, 영화에서 마음에 드는 이름들을 적어두기도 했으며, 한국에서 영어 학원을 다닐 때 수업 중에 한국 이름 대신 영어 이름을 부르라는 권유도 받았었다.

가까운 친구가 “그레이스”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 이름은 어딘가 차분하고, 조금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대신, 내 마음속에는 오래전부터 ‘줄리아’라는 이름이 있었다.

영화를 보면, ‘줄리아‘란 이름은 왠지 환한 웃음과 매력이 넘치는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내 이름 "수진"에 들어 있는 'J' 철자가 포함된 이름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줄리아"라는 이름이 어떨까, 곰곰이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며칠 뒤, 그는 여러 번 연락해 와 함께 가 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동행하게 되었다. 사실 친구가 오래전부터 이름을 바꾸고 싶어 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미리 적어 둔 이름 목록을 하나씩 펼쳐 보이며, 몇 가지 후보를 제안받기도 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앉아, 친구가 이름 하나하나에 담은 의미와 이유를 귀 기울여 들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우리가 부르는 ‘이름’이라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그때서야 알 것 같았다.


친구는 마침내 마음에 쏙 드는 이름을 정하더니, 갑자기 내게 물었다.

"수진아, 네 이름은 어떤지 한 번 물어봐. 궁금하지 않아?"

"어? 어... 난 괜찮아. 내 이름 예쁘잖아. 수진."

그럴 것이, 내 이름은 아빠가 내가 태어났을 때 딸의 이름을 몇 날 며칠 고민하며 한 자 한 자 정해줬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서 들었기에, 내 이름에 대해 불만은 전혀 없었다.

受 (받을 수): '받을'이라는 뜻과 함께 재주, 능력, 복, 장수를 받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로 인해 능력으로 출세하고 많은 재물을 소유하며 오랫동안 번창하라는 암시를 담고 있다.

珍 (보배 진): '보배', '진귀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네이버참조


"이름이 뭐죠? 한 번 여기에 적어봐요." 친구의 이름을 봐주시던 분이 종이를 쓱 내밀었다. 나는 괜찮다는 말과 함께 친구를 바라보았다.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는데, 친구가 내 팔을 툭 쳤다.

나는 한자로 내 이름 '受(받을 수)'와 '珍(보배 진)'을 썼다. 그분은 내 이름을 바라보다가 다시 노트에 크게 쓰며 털털하게 웃으셨다.

"수진, 어디 가더라도 잡초처럼 잘 살겠네."

"잡초는 비바람이 불고, 춥고 언 땅에서도 버티며 잘 자라잖아!"

"네? 제가요?"

그분의 설명은 이랬다. 잡초가 아무리 뽑아도 다시 자라는 특성이 있듯, 어려운 상황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 강한 정신력과 생명력을 가진 긍정적인 사람을 비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진'보다 '수'가 더 좋다고 덧붙였다. ''가 이름을 다 아우르며 그 뜻이 내 이름을 잘 받쳐준다고 하면서, ''를 많이 부르라고도 하셨다.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다. 내 이름은 아빠가 정성 들여지어 준 것이니, 그 자체로 충분히 소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갑자기 도장이 필요했던 적이 있었다. 겉보기에도 허름한 작은 가게였는데, 그곳에서 연세 지긋한 어르신께서 내 이름을 나무 도장에 새겨주셨다. 도장을 새기며 어르신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참 좋은 이름이구나."

나에게 해주신 말씀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내 이름을 떠올릴 때면 자연스럽게 그날의 장면까지 함께 떠오른다.

'수진'이란 이름은 참 흔하다. 학교 다닐 때도 '수진'이란 이름은 한 반에 두 명씩은 있었고, 드라마나 영화에도 자주 나오는 이름이다. 그만큼 흔한 이름이기도 하다. 가까운 지인의 딸아이 이름도 '수진'인걸 보면 지금도 예쁜 이름으로 많이 쓰이는 듯하다.




그러다 결국 영어 이름을 정하지 못한 채 캐나다에 오게 되었다. 처음 영어 수업에 참석했을 때, 각자 자신의 이름을 적어 책상 앞에 붙여야 했다. 한국 이름은 받침이 있어 외국인들이 부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영어 이름을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 주변에도 영어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나 역 시 영어 클래스에서 아직 결정하지 못한 영어 이름을 두고 망설일 틈이 없었다.

캐나다 선생님이 '네 이름이 뭐니?'라고 묻기 전에 얼른 정해야 했다. 그 순간, 예전에 내 이름에 대해 들었던 '수'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영어 이름 중 'Sue'는 Susan이나 Susannah 같은 고전적인 이름의 약자였고, 그렇게 나는 그날부터 'Sue'로 불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Sue'를 사용했다. 그런데 어느 날, 친해진 캐네디언 영어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수진, 너의 이름이 참 예쁜데 왜 굳이 'Sue'를 써? 그냥

'Soo Jin'이나 'Soo'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

'Sue'는 원래 Susan이나 Susanna 이름의 약자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이 내 마음 깊이 와닿았다.

“정말, 사람들이 'Soo Jin(수진)'을 그대로 발음할 수 있을까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한국 이름의 받침 발음이 외국인들에게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선생님은 내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이 좋다고 조언해 주셨고, 그 말에 내 마음도 공감되었다. 내 안에서는 ''가 더 자주 불려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고, 그렇게 나는 그때부터 'Soo'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스타벅스에서 다정하게 적어준 내 이름과 동료가 써준 I LOVE YOU, Soo'


캐나다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내 이름은 Soo야'라고 소개하면, 대부분 쉽게 기억한다. 회사 이메일 주소도 자연스럽게 'Soo@'로 시작하고 이력서에 넣는 이메일도 'Soo@'를 사용한다.

어느 날, 회사 동료가 다정하게 물었다.
"수, 네 이름이 참 간단해서 기억하기 쉽더라. 혹시 네 이름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수, 너는 네 이름과 '수' 너와 너무도 잘 어울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내 이름이 나랑 잘 어울린다고? 그럼 '줄리아'는?

‘줄리아’와 ‘수‘ 둘 중에 어떤 이름이 더 나 같아?"

동료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줄리아? 왠지 너랑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넌 그냥 'Soo'야! 'Soo Jin'도 정말 예쁘고, 네 이름이 너랑 딱 잘 어울려! “

"아, 그래? 고마워!"

사실, 모든 동료들과 캐나다에 사는 친구들은 내 이름이 나와 잘 어울린다고 말해준다.


그러고 보니, 가까운 한국 친구들은 대개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반면, 외국 친구들이나 동료들은 본래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 우리말에는 받침이 많아서 외국인들이 발음을 어려워할 때가 있어, 자연스럽게 영어 이름을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받침이 들어간 이름은 종종 어색하게 들리거나, 매번 정확히 발음해 달라고 정정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나 역시 한국에서 영어 학원에 다닐 때마다 영어 이름을 적어야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대부분 본인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 캐네디언 영어 선생님도 굳이 영어 이름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조언해 주셨다. 외국 친구들도 본인의 긴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스펠링이 길면 이메일을 보낼 때마다 상대방이 다시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서 쉽고 간단한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나에게 꼭 맞는 이름, '수(Soo)'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짧고 간결하면서도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이름. 누구나 쉽게 기억하고,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를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이 되었다.

오늘도 회사 동료들은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준다.

"Thank you Soo! Beautiful Soo!"

그들의 따뜻한 말에, 나는 미소 지었다.

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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