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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니까, 사과 따러 가요

캐나다의 햇살을 머금은 빨간 사과처럼

by Soo 수진

이맘때쯤, 가을이 다가오면 매년 두 가지는 꼭 한다.

9월 중순이면 애플피킹을, 10월 초쯤엔 캐나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을 만나러 간다.

가을은 사과의 제철이라 지금 캐나다에서는 싱싱하고 맛있는 사과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온타리오주에는 16가지 종류의 사과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인기가 많은 건 Gala, Honeycrisp, McIntosh, Ambrosia다. 나는 이 중에서 Honeycrisp를 가장 좋아한다. 새콤달콤하면서도 아삭한 식감에 과즙이 풍부하고 산미가 조화롭다. 일반 사과보다 껍질이 얇아 씹는 느낌이 가볍고, 한 입 베어 물면 경쾌한 소리까지 기분 좋다. ‘완벽한 사과’라는 평을 받으며 파이나 샐러드 등 다양한 요리에도 잘 어울린다. 이름마저 달콤한 ‘허니’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사과다.

사과 농장에서 막 따낸 사과는 그 신선함이 입안 가득 번진다. 그 맛을 너무 잘 알기에 깊은 가을이 오기 전, 서둘러 애플피킹을 하러 농장을 찾는다. 너무 늦게 가면 내가 좋아하는 사과는 이미 다 수확이 끝나 다른 품종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농장을 걷다 보면, 손안에 쥔 작은 사과 하나가 내게 계절을 선물해 준 듯하다.

토요일 아침, 어느 날보다 날씨가 싸늘해졌다.

아침 기온은 10도.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나는 서둘러 갈 채비를 하고, 차 안에 가득 번지는 커피 향을 느끼며 농장으로 향했다.

집에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길이지만, 그 시간이 늘 즐겁다. 나는 도시를 벗어나 달리는 걸 좋아한다. 이 날도 차창 너머로 들어오는 자연은 상쾌했고, 나무들 사이로 흘러드는 빛은 눈부셨다. 길게 뻗은 도로 위를 달리는 기분이란… 주중에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던 내 눈의 피로와 몸의 무거움이, 탁 트인 풍경 속에서 어느새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도착해 보니 다행히 아직 이른 오전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여러 농장을 가봤지만, 지금은 이곳만 찾는다. 2년 전부터 매해 이 농장에 오는 이유는 단 하나. 다른 곳보다 Honeycrisp 사과가 많기 때문이다. 크고 빨갛게 영근 사과들이 가득한 풍경에 마음이 먼저 달콤해진다.

이곳에서는 농장 안에서 따 먹는 건 비용을 내지 않고, 입구에서 봉투를 구입해야 한다. 한 봉투에 40불. 크지 않은 봉투지만, 그 값이 아깝지 않다. 마트에서도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게 바로 Honeycrisp니까.

나는 허니크리스피 구역에 차를 세우고, 빨갛게 빛나는 사과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햇살을 듬뿍 받은 사과는 선명히 붉었고, 잎에 가려 햇빛을 덜 받은 부분은 은은한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아직 햇살을 더 머금어야 할 초록빛.

봉지에 담기 전, 나는 붉은 사과 하나를 따서 바로 한 입 베어 물었다.

“아, 정말 맛있다. 이래서 내가 허니크리스피를 좋아하지.”

아삭아삭 씹히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꿀물이 터지는 듯한 풍부한 과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그 자리에서 몇 개를 더 따서 먹고 말았다. 물리지 않는 맛, 끝없이 손이 가는 사과. 초록빛 나무에 매달린 빨간 사과를 보며, 나는 어느새 농부가 된 듯 사과 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사과 빛깔 :)

햇살을 가득 머금은 빨간 사과만 담다 보니, 어느새 한 봉지가 가득 채워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과나무 사이로 퍼져나갔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사과를 따는 작은 손길, 뛰어다니며 빨갛고 파란 사과를 한입에 베어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넓은 초록빛 자연 속에서 계절을 배우고, 서로를 배려하며 도와주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익혀가는 아이들.

한 꼬마아이가 내게 다가와 빨간 사과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오늘 내가 딴 사과가 제일 맛있어요!” 그 미소는 너무도 예뻤다. 오늘의 하늘처럼 맑고 청명한 빛이 그 웃음 속에 가득했다. 오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과를 따는 즐거움과, 사람들과 웃음을 나누고, 사과를 나누며 마음이 환해지는 시간을 만난 것이 더 큰 선물이었다. 바쁘고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이 건네는 위로 속에서 새로운 영감과 에너지를 가득 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렇게 스쳐 가는 순간들 하나하나가 쌓여, 오늘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나의 모든 순간이 다 소중하다.

청명한 하늘 아래.

Just as I am, 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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