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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_보고타

by 소망이 아빠


보고타에서의 첫날, 잘~ 쉬었다!


어제 밤에 보고타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해둔 에어비앤비 숙소로 이동해 집주인 Diego를 만나고 짐을 풀었다. 무더웠던 쿠바에 비해 콜롬비아는 춥게 느껴진다. 물론 그래도 청바지에 면티 정도면 되는 날씨지만.


Diego는 오늘 가족과 1박 2일 여행을 갔다. 보고타에 오면 일단 푹 쉬려고 마음 먹었던 터라 나에겐 더 잘됐다. 덕분에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토요일 하루를 집에서 혼자 푹 쉬었다.


일단 세탁기부터 돌렸다. 계속 샤워하면서 대충 밟아 빨아온 옷가지들을 다 세탁기에 넣고 돌리니 속이 다 시원하다. 점심 때쯤 미리 위치를 알아둔 근처 마트로 향했다. 동네는 멕시코나 쿠바에서 봤던 보통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매우 이국적인 풍경이지만 이제 눈에 익은거 보니 중남미 여행도 어느덧 익숙해지나 보다. 토요일이라 공원에 아이들 운동경기가 한창이다. 꽤 전문적으로 보이는 축구 경기를 좀 구경하다가 마트로 갔다.


역시 물가가 싸다. 과일과 고기, 빵, 쌀 등을 한아름 샀는데 다 합쳐서 1만원도 안된다. 덕분에 마음이 푼푼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얼른 요리를 해서 먹고 여유롭게 뒹굴거릴 생각에 기분이 좋다. 냄비에 밥을 앉히고 큼직한 닭다리와 양파, 파프리카를 대충 후추를 뿌려서 프라이팬에 올렸다. 지글지글한 소리, 이렇게 주말에 집에서 요리하는 게 얼마만인지... 여행이 일상이 되면 일상이 특별한 것이 되는 것 같다. 보고타의 첫 날, 나는 말 그대로 푹 쉬었다.


이 만큼이나 샀는데 다 합쳐서 1만원도 되지 않았다








보고타에서 만난 보테로 (Botero)



콜롬비아는 나에게 남미종단의 출발지로서 의미가 있다. 남미 대륙 가장 북쪽에 위치한 이 곳에서 저 아래 남쪽 끝까지, 앞으로 3개월동안 여행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사실 보고타는 (그리고 어쩌면 콜롬비아는) 남미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끄는 곳은 아니다. 남미하면 역시 페루의 마추픽추나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 그리고 파타고니아 같은 장대한 곳들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타를 기대한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페르난도 보테로다 (Fernando Botero Angulo).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예술가인 그는 일명 '뚱뚱한 모나리자'로 유명한 예술가다. 특유의 표현방법 때문에 비평가들에게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독특한 표현방식 뿐 아니라 전쟁같은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2017년 11월 26일, 보고타 다운타운에 위치한 Museo Botero에서 그의 작품을 만났다.



상상력이 어마어마한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작품에 담긴 메세지와 그걸 표현하는 독특한 방식, 그리고 그 모든걸 구현해내는 상상력과 실력이 놀라웠다. 보테로의 작품을 통해 콜롬비아의 정서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하루였다.








보고타의 마지막 밤, Monserrate 산에서의 해넘이와 야경




보고타는 머무는 내내 편안한 곳이었다. 본격적인 남미 종단 여행의 첫 관문이라 며칠 시간을 두고 푹 쉬기도 했고, 여러가지로 불편했던 쿠바 다음으로 온 곳이라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잘 사는 나라는 아니지만 대중교통도 잘 정비돼 있고 슈퍼마켓엔 값 싼 식재료가 가득해서 쿠바에서 떨어진(?) 영양을 보충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터넷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여행 정보를 검색하거나 친구들과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보고타는 큰 도시다. 시가지 자체는 아름답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도시를 감싸는 높은 산들 덕분에 기억에 남을 만한 풍경을 자아낸다. 특히 보고타 Downtown 바로 옆에서 그 위세를 과시하는 몬세라떼 산은 (Cerro de Monserrate) 이 도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일등 공신이다. 보고타 도시 자체가 고산지대라 잘 실감이 안 나지만 몬세라떼 산은 해발 약 3,100m에 달하는 높은 산이다. 직각에 가까워 보일만큼 가파라서 도심을 걷다보면 건물 사이로 웅장한게 솟은 위세를 느낄 수 있다. 오늘 오후 3시쯤 나는 케이블카를 타고 몬세라떼 산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탁 트이는 전경에 매료되어 해넘이와 야경까지 보려고 4시간 가량을 이곳에서 머물렀다.


한참을 내려다 보고 수 십장의 사진까지 찍은 후에 산책로를 따라 조금 걸었다. 정상에는 대표적으로 교회가 있고 (그래서 주일엔 케이블카가 거의 반값이란다) 고급 레스토랑이 두 개 있다.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따라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박혀 돌아가신 ‘고난의 길’을 묘사한 동상들과 밤이면 점등되는 전구 등이 장식돼있다. 고산지대라서 그런지, 혹은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짧은 거리를 걸었는데도 숨이 찼다.


계단에 걸터앉아 낮에 산 Botero 그림 엽서에 편지를 쓰다 보니 어느덧 해가 낮아졌는지 옆 얼굴이 뜨거웠다.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드디어 해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몬세라떼 산은 도시의 동쪽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전망대에서 도시를 내려보면 지는 해를 마주하게 된다. 정면에서 얼굴을 뜨겁게 달구던 해는 곧 구름에 가렸다가 저 멀리 산 뒤로 자취를 감추었다. 하늘만 주황색으로 물들 뿐 달궈진 얼굴이 금세 식었다.


도시의 불빛을 보고 내려가기 위해 나는 저녁을 먼저 먹기로 했다. 정상의 두 레스토랑은 San Isidro와 Santa Clara인데 며칠전에 얘기를 나눈 현지인이 San Isidro를 추천해줬던 터라 그곳으로 들어갔다. 와! 콜롬비아는 물론 멕시코와 쿠바에서도 간 적 없는 고풍스런 내부, 물가가 싼 콜롬비아 치고는 메뉴가 다 비쌌지만 조금씩 불을 밝히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작은 사치를 부리고 싶어지는 식당이었다. 나는 소고기 스테이크를 시키고 창가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았다. 주황빛으로 물들었던 하늘에서 조금씩 떼어 나눠가진 듯 도시의 불빛이 많아지고, 그만큼 주황색 하늘은 실처럼 가느다래졌다. 곧이어 밤, 탁 트인 시야와 파도처럼 끝없이 일렁이는 불빛; 보고타의 야경은 내가 본 그것들 중 가장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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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_180927.jpg?type=w2 레스토랑에서 바라본 창 밖의 모습
20171128_181052.jpg?type=w2 20,000원 정도라 크게 부담스럽진 않았지만 동네 치킨집에서 파는 닭 한 마리 통구이가 우리돈 4,000원 정도인 걸 감안하면 꽤나 비쌌던, 하지만 맛있었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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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_185946.jpg?type=w2 너무나 아름다웠던 야경,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는 게, 그래서 누군가에게 온전히 전할 수 없는 게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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