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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기 Apr 27. 2024

겁쟁이가 실패해도 자존감을 잃지 않는 이유

-(비공식) MC데뷔-

친구의 조언대로 유아체육강사를 도전했다. 학창 시절 꾸준히 했던 무에타이와 주짓수를 어필하여 어렵지 않게 취업에 성공했다. 면접을 보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다른 강사들의 수업을 참관하는 기간이 있었다. 유아체육강사라는 직업이 취업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이 일을 실제로 하는 것은 성향에 따라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절차라고 했다.


여러 강사들의 수업을 참관하고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실패 대한 두려운 감정이 느껴졌다. 과거의 나였다면 이 순간이 포기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의 5개월 전으로 돌아간다.


한창 MC아카데미를 다닐 때, MC로서 진행을 해보고 싶었다. 아카데미 나름 네트워크가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러 MC들이 초보자도 할 수 있는 행사 구인을 올렸었다.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페이를 받고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아카데미를 수료했지만, 이론과 트레이닝 방법, 여러 가지 노하우를 얻었을 뿐, 무대에 서본 적 없는 완전 일반인이었기에 돈을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그때 내가 생각해 낸 것이 운영하고 있는 독서모임의 신년회를 열어보는 것이었다. "다음 달 정모는 신년회로 대신하겠습니다. 다양한 게임도 하고 맛있는 식사도 준비할 테니 많은 참가 부탁드립니다!" 참가자가 아무도 없으면 어쩌지라는 우려와 달리 11명 참가자가 있었다. 비공식적이지만 MC데뷔라는 생각에 기뻤다.


기쁨도 잠시, 생각보다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장소 섭외와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 선정, 큐카드 제작, 선물 선정 등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같이 모임을 운영하던 형이 업무가 바빠지면서 모임을 떠난 시기였기 때문에, 신년회 준비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한 달 동안 퇴근 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무언가를 책임진다는 압박감은 그만큼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신년회를 준비하는 동안,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결국 모든 준비를 마쳤다. 모임 당일, 모든 사람들이 신년회 장소인 파티룸에 모였다. 피자와 치킨을 먹으면서 스몰토크를 하고 있는데 '레크리에이션은 그냥 하지 말까? 망할 거 같아. 자신이 없어' 다시금 두려움이 다가왔다. 그때 내가 택한 방법은 레크리에이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지금부터 간단한 게임하고 선물 좀 드릴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참가자들이 서로 아는 사이였고 술도 어느 정도 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별도의 아이스브레이킹 기법은 활용하지 않았음에도 반응이 좋았다.


"네~"


미친 듯이 긴장됐지만 이제 도망갈 수도 없다. 이어서 준비한 오프팅 멘트를 쳤다. 이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약 1시간가량의 레크리에이션을 혼자서 진행했다. 결과는 스스로 절대 만족할 수 없는 진행이었다. 모임원들은 잘했다고, 재밌었다고 칭찬했지만 그 말들마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년회가 끝이 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아.. 역시 내성적이고 겁이 많은 사람은 MC가 될 수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찰나의 순간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있다.


나쁘게 말하면 정신승리, 좋게 말하면 긍정적인 생각이 떠 올랐다.


'나 그래도 도망은 치지 않았다'

 

실패 속에서 작은 성공을 찾아낸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레크리에이션 말고, 술이나 먹자고 둘러대며 도망갔을 텐데.. 아니지! 애초에 이런 도전 조차 하지 않았지'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계속해서 오늘 했던 작은 성공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사람들이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네? 생각해 보니 레크리에이션을 하는 동안 사람들이 많이 웃긴 한 것 같아! 그리고 준비한 오프닝 멘트와 클로징 멘트도 적용해 봤어!'


이 과정에서 기분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서 작은 성공에 취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정신승리'일 뿐이다. 나는 다음 날, 촬영해 둔 신년회 영상을 모니터링했다.


쉽지 않았다. 모니터링의 방법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영상 속에 나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였다. 그럼에도 동영상을 끄지 않았다.


'여기서는 이 멘트 말고 다른 멘트를 쳐볼걸'

'이 멘트는 충분히 괜찮았는데 목소리가 작아서 묻혀버렸네'

'이 게임을 할 때, 이런 돌발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 다음부터는 이렇게 대처해야겠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세 가지를 느꼈다.


1. 실패 속에서 했던 작은 성공을 외면하지 말자.

-그래야 포기가 아닌, 실패를 받아들이고 보완할 점을 찾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2. 목표를 크게 갖는 것도 좋지만, 너무 겁이 난다면 한 칸씩 올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가 만약 독서모임이 아닌, 처음부터 페이를 받는 진행을 했다면, 나 같은 겁쟁이는 행사를 망친 순간, MC 자체를 포기했을 것이다. 나보다 딱, 한 칸 높은 계단을 목표로 준비하면서 도망치지 않고 도전해서 성장할 수 있었다.


3. 모든 것은 경험이 된다.

-나는 이 경험으로 실패에 대한 불안감을 견뎌내는 법은 물론, 실패 후에 좌절감을 이겨내는 법까지 배웠다.


이때 떠오른 세 가지의 생각은, 나를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성장하게 해 주었다.


몇 번의 참관을 했을 때 대표님께서 물었다.


"참관해 보니까 어떠세요? 해볼래요? 안 해도 괜찮으니까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네 대표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유아체육강사 '너구리 선생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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