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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기 May 11. 2024

용기와 자신감

-대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다-

친척 형의 결혼식까지는 2주 조금 남짓한 시간이 남아있었다. 결혼식 사회자는 신랑의 친구들 중, 말 좀 한다 싶은 친구에게 부탁하는 경우도 많은 만큼, 큰 스피치 기능을 필요로 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인 기준이었다. 내가 원하는 사회자로서 퍼포먼스는 '전문 사회자를 썼구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정도의 퍼포먼스를 원했다. 더군다나 한창 유아체육강사로서 역량에 집중하느라 mc공부를 놓고 있던 시기였기에, 2주라는 시간은 결코 여유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우선, 친척형과 전화 미팅을 가졌다. 미팅이 끝나자마자, 오직 그날의 신랑신부만을 위한 멘트를 짜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퇴근하고 결혼식 준비만 하다가 잠을 잘 정도로 몰입해서 준비했다. 이토록 열심히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위에 말한 것처럼 내가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는 날이었지만 프로페셔널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신랑신부에게 인생에 한 번뿐? 은 아닐 수 있지만, 한 번이면 좋은 날의 추억을 좋은 기억으로 남겨주고 싶은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다. 물론 준비 과정에서, 독서모임 신년회 때처럼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몸이 힘든 것보다, 첫 도전이니 만큼 잘 해낼 자신감이 없었기에 부담감이 컸었다.


일주일 동안 여러 번의 미팅을 통해 대본 작성을 마쳤고, 남은 일주일은 스피치에 힘을 썼다. 대본을 그대로 읽을 생각은 없었지만, 어떤 멘트를 하고, 그 멘트의 의미정도는 인지하고 있어야 했기에 멘트가 입에 붙도록 스피치 연습을 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예식 1시간 전, 식장에 도착해서 예도분들과 간단한 미팅을 하고 사회자석에 올랐다.


하객 여러분들께 안내 말씀 드립니다. 잠시 후 oo시부터, 신랑 ooo군과 신부 ooo양의 축복된 결혼식이 거행될 예정입니다. 밖에 계신 하객 여러분들께서는 마련된 좌석에 앞쪽부터 자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난생처음 대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뱉어낸 첫 멘트였다. 첫 멘트를 뱉고 나니 긴장이 풀렸다.

이후로 두 번의 안내멘트를 더 하고 나서, 예식은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예식 시작을 알리면서 사회자 소개를 했을 때 들은 박수 소리는 잊을 수가 없다. 물론 이 박수는 형식적인 박수 일 뿐이다. 하지만 대중 앞에서 내가 서 있고, 그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mc로서, 사회자로서 설레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약 30분의 예식이 끝나고, 사회자석에서 내려가자마자, 양가 혼주분들에게 걸어가서 축하의 마음을 전했다.

이렇게 나의 첫 결혼식 사회는,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결과였지만 하객들의 칭찬까지 받으니 더 기뻤다. 무엇보다 나의 목표였던 전문 사회자 줄 알았다는 피드백도 받았다. 이 날의 성공은 나에게 값진 자신감을 안겨주었는데, 그보다 더 소중한 선물은 스스로를 알게 되는 깨달음이었다.




그동안 나는 처음 하는 일을 앞둘 때면 '잘할 수 있다! 아자아자!' 하면서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 애썼다. 그럼에도 두려움은 늘 존재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나의 도전을 막는 걸림돌이 되곤 했다. 하지만, 이날 결혼식사회자로서의 경험이, '나'라는 놈은 도전할 때 '자신감'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닌, '용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자신감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도전하는 용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겁이 많은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매 순간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의학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다.


"용기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도 계속 해내는 것이야"


조금 오글거리지만, 나에게만큼은 이보다 용기를 잘 설명할 수 없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과 경험이 다르기에 말이 진리라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처럼 겁이 많고,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는 핑계로 도전을 미루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들은 저 대사를 곱씹으며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나는 결혼식 사회라는 작지만 소중한 경험을 용기로써 얻어냈고 이 경험으로 대중 앞에 서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예식 바로 다음 날, 또 다른 기회를 주는 용기를 갖게 해 준다.

이전 09화 '처음'에 대한 두려움은 무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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